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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미스터리' 숨은 키워드, 정유라

조회수 2016. 11. 22. 16: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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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사라진 그날의 7시간에 대한 정윤회의 수상한 알리바이
출처: 연합뉴스
사라진 7시간, '7시간 미스터리'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사라졌던 '7시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미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의 그 '7시간'을 설명하는 공식 문건은 딱 2개뿐이다. 2015년 12월 17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다쓰야가 쓴 기사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판결문(이하 가토 판결문)과, 2016년 10월 26일 녹색당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결정문(이하 정보공개청구 결정문)이다.

두 건의 공식 판결은 대통령의 그날 7시간에 대해, 완벽하진 않지만 일부를 설명한다. 이를 중심으로, 당시 대통령이 어떤 문제에 관심 있었는지를 여러 관계자에게서 확인했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언론이 좇는 경로와는 한참 다른 일들이 그날 청와대에서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① 2014년의 '비선 실세'는 누구였는가


출처: giphy.com
우선, 2014년 당시 누가 진짜 실세였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모든 비선 관련 의혹이 최순실씨로 모아진 상황이지만, 2014년에도 그러했는지 되짚어야 한다.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이혼은 2014년 5월 확정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일이다. 정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이혼 뒤"에 시작됐다고 말했다.


또한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파동을 보더라도 당시 비선 실세는 정윤회씨라고 보는 게 무난하다.

출처: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14년 당시 비섯 실세가 누구였는지 되짚어보면,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와 이혼(2014년 5월)한 뒤 권력에서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비선이었다.


② 정윤회씨 '알리바이'는 확실한가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는 세간의 소문을 소개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출처: 연합뉴스
가토 다쓰야.

이에 대해 법원은 두 가지 소문이 허위임을 규명하려 했다.


  1.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
  2. '두 사람은 긴밀한 남녀관계다'

법원은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독립적 근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법원은 통화기록을 근거로 정윤회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음 네 차례 발신 시각을 근거로 법원은 정윤회씨가 청와대에 찾아가 대통령을 만났다는 추측을 허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각 발신지
11:03 서울 강남구 개포2동 168-x 인근
14:20 서울 종로구 평창동 158-x 글로리아 타운 인근
15:30,
17:36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7-xx 인근
20:32 강남구 신사동 성도빌딩 인근

그런데 이 판결문은 비어 있다.

판결문에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윤회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특정한 시각은 '오후 2시 20분경부터 3시 30분경까지', 그리고 '5시 36분부터 8시 32분 경까지' 오후와 저녁 시각이다. 판결문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과 낮 시간에 대해서는 무속인 이세민씨와 밥을 먹었다는 정씨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석연치 않다.

출처: 연합뉴스

애초 정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특별한 일이 없이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다가, 통화기록이 나오자 "이세민과 점심을 먹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십수년간 음지에서 일하며 '치밀하고 꼼꼼한 일처리'를 보였다는 정윤회씨가 누군가와 점심을 먹었는지 잊었다고 진술한 것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수상한 알리바이는 또 있다.

출처: 조선비즈 최문혁 기자
최순실씨의 복층 자택이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집에서 머물다가 평창동에 가서 이세민과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정씨가 평창동에서 돌아와 쉬었다는 강남의 '집'은 최순실씨 거주지였다.

그의 전화 발신이 포착된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7-XX 인근은 최순실씨 자택에서 직선거리로 100m도 안 되는 곳이다. 2014년 4월 당시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와 이혼소송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가 최씨 집에 가서 쉬었다는 것이다. 


물론 부부 사이 일이니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랜 별거 끝에 이혼소송 중임에도 굳이 최씨를 만나러 갈 일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③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에 무얼 했나


정윤회씨의 오전과 낮 시간을 주목해 녹색당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청구 결정문을 보면, 묘한 시간대가 발견된다.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고, 10시 30분에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를 한다. 그러곤 이후 10차례의 서면보고가 이뤄지는 동안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는다.

청와대의 해명을 인정하더라도 오후 2시 11분까지, 최소한 3시간 41분 동안 대통령은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출처: 세계일보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은 '7시간 의료시술 의혹'에 대해 "시술은 확실히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은 다시 질문해 봐야 한다.


④ 세월호 참사 당시, 정윤회·최순실의 관심사


2014년 4월 16일. 정윤회·최순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해 4월은 정윤회·최순실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공주 승마' 파문이 바로 이때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유라를 둘러싼 대한승마협회 문제, 체육 개혁 이슈의 한복판에 있었다. 2014년까지 최순실씨의 최대 관심은 정유라의 대학 진학과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 여부였다. 세월호 참사 전후 대한승마협회 관련 사건 일지를 시간 순대로 따라가보자.

2014년 4월 8일, 세월호 참사 8일 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출발점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국회 대정무 질의 '공주 승마' 의혹 제기.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이라 불리는 정윤회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있다." "승마계에선 특정 선수를 비호하고, 지속적으로 특혜를 줘 국가대표를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개입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4월 9일
대한승마협회 정기이사회 핵심 집행부 5명 사퇴
처음으로 '정윤회씨가 개입된, 사적 채널에 의한 비정상적인 통치 행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당일 오후 열린 대한승마협회 정기 이사회에서 신은철 회장, 김효진 실무부회장, 전유헌 이사, 손영신 이사, 안중호 부회장 핵심 집행부 5명이 사퇴한다.

신은철 회장(사진=연합뉴스)

4월 14일
김종 문체부 제2차관 기자회견
"대한승마협회의 일부 관계자가 정치권 등을 통해 제기한 시·도 승마협회장 사퇴 압력과 특정 선수 특혜 논란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

김종(사진=연합뉴스)

4월 20일
대한승마협회 승마인 228명 서명 한화 복귀 청원 건의서 제출
"한화 그룹이 회장직을 내려놓고 협회 운영을 그만둔 일은 승마계에 엄청난 손실이자 충격적인 일." "특히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화그룹의 역할과 지원이 한국 승마계에 꼭 필요한 상황."

뉴스1


⑤ 세월호 참사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반전


4월 20일 발표된 건의서는 대한체육회, 문체부, 한화그룹에 전달됐고 건의서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4월 23일, 한화는 승마협회 회장사를 계속 맡겠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인 안민석 의원 질의 이후 회장사 사퇴를 결정했던 한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4월 23일 회장사 유지를 결정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류 변화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묻자 한 승마협회 임원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4월 16일)이었다. 그다음 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민석 의원 질의 이후) 한화 집행부를 내보내자고 했던 대의원들이 갑자기 '한화가 남아야 한다'는 건의서를 내는 게 그 하루이틀 사이에 이뤄졌다. 청와대에서 눌렀다는 얘기도 있었다."라고 답했다.

출처: 한겨레 박종식 기자


⑥ 갑자기 '체육 개혁' 오더 내린 까닭은


물론 승마협회 임원들이 한결같이 4월 16일을 지목한 것은 아니고, 날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한계는 있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키를 쥐고 있을 김종 전 차관 역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서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대통령이 집무실은 아니지만 청와대 경내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 시간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청와대의 해명대로 역시 공무 성격의 일을 보고 있었다면,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출처: 연합뉴스

김종 전 차관은 YTN 기자에게 "대통령으로부터 세월호 이튿날도 체육 개혁 오더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갑자기 4월 17일에 정유라 이슈인 '체육 개혁' 오더를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4월 15일 국무회의 때까지 인지되지 않았던 사건이 17일 '대통령 오더'로 떨어진 사이에 4월 16일이 놓여 있다.

그해 봄,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관심은 오로지 정유라의 대학 진학과 아시안게임 금메달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승마협회가 풍비박산돼서는 절대로 안 됐고, 초읽기 수준에서 그걸 막아줄 공적 주체가 필요했던 때였다.

글/ 김완 기자

편집 및 제작/ 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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