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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영어교육과→미국 이민→대학원→치과의사, 지금은..

조회수 2020. 9. 22. 2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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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치과, 밤에는 소설.. 이 사람의 직업은?

낮에는 핸드피스(치과용 치아 절삭기구)를 들고 밤에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치과의사 겸 추리소설 작가 김재성(55)씨의 일과다. 그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3학년 재학 중인 1984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후 앨라배마주립대 영문과와 치과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시시피주립대병원 치과 레지던트를 거쳐, 10여년간 개원의로 활동했다.


2003년 귀국한 김 원장은 한국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낮에는 진료를 보고 밤에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9년 첫 작품 ‘호텔 캘리포니아’를 비롯, ‘불멸의 탐정 셜록 홈즈’, ‘경성좀비 탐정록’, ‘경성 새점 탐정’,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추리소설과 동화 약 20권을 썼다. 그는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jobsN은 최근 김씨에게서 작가이자 치과의사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김재성 원장 제공
김재성 원장

이민자로 살아남기 위해 치과의사 선택한 문학소년


-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는데, 정작 직업은 치과의사를 선택했다.

“셜록 홈즈가 좋았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고 작가를 꿈꿨다. 초등학교 때부터 200자 원고지에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곤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작가의 꿈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이민자 신분으로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작가보다는 전문직이 있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89년 앨라배마주립대 치과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같은 시기 같은 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야간 과정을 밟으면서 소설을 썼다. 다행히 학교에서 두 과정을 병행하는 것을 허용하더라.”


- 어떻게 등단했나.

“2009년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목 없는 인디언’이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같은 해 첫 장편 추리소설 ‘호텔 캘리포니아’를 냈다. 집필하는 데에 1년 조금 넘게 걸렸고, 구상까지 도합 4~5년 걸렸다. 병원에서 퇴근하고 3시간, 주말엔 6~7시간씩 썼다. 여행 갈 때는 차에서 노트북으로, 평일에 예약 환자가 오지 않을 때에도 진료실에서 틈틈이 썼다. 요즘은 익숙해져서,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이 덜 걸린다. 2017년 말부터 올해까지 출판사에 넘긴 책만 재발간을 포함해 8권 정도다.”


- 미국에서 작법을 배웠는데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게 어렵진 않았나.

“소설 쓰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워 본격적으로 습작하기 시작한 건 앨라배마주립대 영문과에 다닐 때부터였다. 당시엔 영어로 소설을 쓰는 게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에서 19년간 의학 공부와 의사 생활을 하고 2003년 한국으로 돌아오니 오히려 한국어 문장력이 떨어졌다. 지금은 다시 한국어로 15년째 글을 쓰다 보니 많이 편해졌다.”


“제주도는 영감의 원천... 제주도 살기 전에도 연 3회 방문”


- 올해 2월 ‘제주도에 간 전설의 고양이 탐정’이라는 추리 장편 동화 1권을 냈다.

“9편짜리 시리즈로 지금도 쓰고 있다. 제주도에 대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글 쓰는 걸 꿈꿨고, 2016년 말에 아예 제주도로 집을 옮겼다. 제주도에 살기 전에도 1년에 2~3번은 제주도에 왔다. 세계를 다녀 봐도 이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드물다. 재밌는 전설이 많아 소재를 찾기에도 좋다.”


- 제주도 말고 영감을 받는 분야가 또 있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을 하고 있다. 2014년쯤부터 경기북부경찰청 골격수사연구회 일을 돕다가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변사체의 치아를 보고 신원, 사인, 연령 등을 추측하는 일이다. 2017년부터 경찰청 국과수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치아를 보고 일어났던 사건을 추적하면서 영감을 받을 때가 많다.”

출처: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있다면.

“당연히 코난 도일. 셜록 홈즈는 탐정 캐릭터의 전형이다. 그가 사용하는 지문 감식, 현장 보존, 증거 중시 등은 당시 최신 수사기법이었다. 캐릭터도 입체적이다. 모르핀에 의지하는 나약하고 그늘진 모습, 약자를 위해 일하면서도 여성혐오 성향을 지닌 모순 등은 현대인과 닮아있다.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의 성실함과 천재성은 존경받을 만하다.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쓴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도 좋아한다. 엔지니어에서 전업 작가로 전향한 게 나와 비슷해 애착이 크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추리 동화 늘었으면


김씨는 추리소설 작가 외에도 아동문학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본업은 당연히 ‘제주 샌프란시스코 치과의원 원장’이다.


- 작가로서 돈을 얼마나 버나.

“아직 베스트셀러를 낸 적이 없어 치과에 비하면 액수는 상당히 적다. 공모전에 당선한 해는 연 1000만원을 넘게 벌었고, 반응이 안 좋은 해엔 연 500만~1000만원 정도 인세로 받는다.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작가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 지금까지 책을 몇 권 냈나.

“추리소설 10여권, 동화 10권 정도다. 동화는 2011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치과의사로서 아이들에게 치아관리 방법을 쉽게 알려주고 싶어서 시작했다. 아이들이 치과에 오는 일이 줄어들길 바라면서 썼다.”


- 동화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 낸 ‘치과의사가 쓴 치과동화 시리즈’는 초판본 대부분이 팔려 많은 서점에서 추가 주문을 했다. 이와 별도로 책 300여권을 전국 복지시설에 기증했다. 책을 사주거나 치아 관리를 해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건강한 치아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감사합니다’라고 쓴 편지가 종종 온다. 받을 때마다 잘 커줘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김재성 원장 제공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 진료하고 있는 김재성 원장

- 추리소설과 동화의 접점이 적을 텐데. 집필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

“두 장르의 접점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접점을 찾아가면서 글을 쓴다. 특히, 병원에 찾아온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나 콘텐츠를 눈여겨봤다. 내 소설에 동물이 등장하거나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이유는 이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추리소설인 추리 동화 장르를 개척하려고 한다.”


-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나.

“추리소설의 특징은 빨려들 듯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매력적인 이야기, 그리고 결말의 반전이다. 최근 흥행한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는 대부분 추리소설의 플롯(이야기 구성)을 사용했다. 아이들이 추리소설에 익숙해질수록 콘텐츠 산업 경쟁력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생계 해결해야 글 쓸 수 있는 환경 아쉬워”


- 앞으로 꿈이 있다면.

“꿈꿨던 많은 것을 이뤘다. 이젠 다른 작가들이 꿈을 이루도록 돕고 싶다.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올해부터 강원도 고한읍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고한읍에서 출판비를 전액 지원해 고한읍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작가들과 함께 쓸 예정이다. 앞으로도 추리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다.”


- 직장생활을 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일단 자신의 생업은 유지하면서 글을 쓰길 바란다. 가난해야 예술가 정신이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생계를 해결해야 글을 쓸 심리적인 여유가 생긴다. 퇴근하고 글을 쓰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소재와 이야기 구성을 완성하고 나면 힘을 덜 들이고 몰두해 작업할 수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재밌는 스토리를 구상하고 글을 쓰다 보면 누구든지 작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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