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안아드릴게요"를 '자발적' 멘트로 보는 회사가 문제다

조회수 2018. 7. 9. 1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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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7월7일 ‘아시아나항공 기쁨조’ 논란이 불거졌다. 과거 북한의 최고 권력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했다는 ‘기쁨조’라는 단어가 2018년 대한민국 서울에 등장한 것이다.

출처: KBS 보도 화면

이날 KBS는 아시아나 항공이 소속 승무원 교육생들을 동원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73)을 환영하는 행사를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장미의 미소’라는 노래 가사를 개사해 ‘회장님께 감사드린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어 9일에는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A씨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회장님 입맛에 맞게 노래를 개사하고 ‘넌 울고 넌 안기고 너흰 달려가서 팔짱 껴라’는 주문도 들었다.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교육생들은 교관 님들에게 그런 주문을 받는다. 교관 님들은 그 윗 분들에게 지시를 받고 회장님이 좋아하시는 거에 따라서 점점 내려오는 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덧붙였다.  


A씨는 교육 과정을 마치고 정식 승무원이 된 후에도 박 회장이 방문하면 모든 업무를 중단한다고 했다. “알아서 잘 준비해야 된다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이에 아시아나 측은 ‘자발적 행사’라는 해명을 고수하고 있지만 비판을 피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회사가 권유하는 ‘자발적 참여’가 정말로 ‘자발성’을 띌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점점 커지고 있는 탓이다.

출처: 소셜미디어 캡처

이와 비슷하게 지난해(2017년)에도 모 병원 행사에서 벌어진 간호사들의 선정적인 장기자랑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체육대회 행사에서 선정적 의상을 입히고 춤을 강요했다”는 주장에 강요와 갑질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직장갑질119를 통해서 재단 소속 간호사들의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며 이들이 ‘야한 옷을 입고 장기자랑을 하고 체육대회에 참여하는 것이 거의 강요되다시피 이뤄지는 점’에 대해 강력히 호소해왔다고 증언한 바 있다.


병원 측은 “강요는 전혀 없었다”고 했지만 결국 “관리 감독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또 안양지방고용청으로부터 “장기자랑 준비 중 병원 간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안무·의상 등이 선정적 분위기로 흘러갔음에도 이에 대한 제재조치가 없었다”며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대한간호사협회는 간호사인권센터를 수립해 이를 비롯한 여러 인권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들의 ‘자발성’은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앞서 사례로 든 직장 내 장기자랑만 봐도 지난 11월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 결과, 응답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반강제적으로 참여가 결정됐다”고 응답했다. (‘전혀 할 의향이 없었으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장기자랑 참여를 결정했다’는 답변이 43.1%, ‘해야 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던 중 (타인에 의해) 참여 결정’이 31.4% 였다.)


회사가 웃으며 말하는 ‘자발적 참여’와 직장인들이 입술을 깨물며 말하는 ‘자발적 참여’의 간극은 언제쯤 좁혀질 수 있을까. 상사의 갑질, 사장의 갑질에 근로자들은 언제까지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할까. 


황지혜 동아닷컴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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