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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탐험대장이 제주해녀와 잠수 후 내뱉은 한마디

조회수 2020. 9. 21. 22: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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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북극·태평양·대서양까지..일생을 탐험에 바친 탐험대장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대장 폴 로즈
중학교 중퇴, 기술자로 일하다 탐험가로
“물고기의 양보다 플라스틱의 양이 더 많아”

“스쿠버다이버를 꿈꾸던 어릴 적 흑백으로 된 다큐멘터리에서 제주 해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습이 머릿 속에 강렬히 남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해녀분들은 저를 매우 반겼어요. 저는 바로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함께 바닷속에 뛰어들어습니다. 서로의 언어로 말할 수 없지만, 우린 바닷 속에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환상적이었습니다.”


제주 해녀와 잠수한 소감을 묻자 탐험가 폴 로즈(paul rose·67)가 말했다. 그는 50년 경력의 전문 잠수부다. 스스로 “(자신이) 물고기나 다름 없다”며 웃었다. 2014년부터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리스타인 해(Pristine Sea) 탐험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탐험 과정을 사람들에게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송 진행자이기도 하다. 다수의 영국 BBC 다큐멘터리를 진행했다. 60대 후반에도 알려지지 않은 심해 생물체를 연구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리더스보전포럼 2018’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탐험가의 삶을 들었다. 

출처: 폴 로즈 제공

수많은 탐험 이끌고 새로운 루트 개척


탐험가는 과학자들이 지구의 미개척지와 희귀 생물의 미스터리를 풀도록 돕는다. 30년 동안 남극·북극·태평양·대서양에서 수백개가 넘는 탐험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탐험 대장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극지방이나 정글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지원 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선장·비행기 조종사·등산가·잠수부·요리사·기술자·건축가 등이 있다. 극지방에서는 쇄빙선·헬리콥터·썰매 등이 필요하다. 과학자가 내게 ‘바다 또는 남극 한가운데에 연구하며 지낼 기지나 캠프가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그걸 만든다. 극한의 환경에서 지내는 과학자와 다른 지원 인력을 안내한다. 탐험을 돕고 물류 지원도 한다.”


1992년부터 10년 간 남극 대륙 로헤라 연구기지(Rothera Research Station) 사령관으로 지냈다. 살을 에는 영하의 바다에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그가 한 다이빙은 모두 최초를 기록했다. 나사 화성 착륙선 프로젝트에 참여해 남극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 에레버스(Erebus)를 등반하기도 했다. 

출처: 폴 로즈 제공

-몇차례 탐험을 이끌었는지

“1989년부터 남극과 북극을 왔다갔다 했다. 정확한 횟수는 모르겠다. 1년 내내 극지방에 산다고 보면 된다. 북반구가 여름일 때 북극에, 남반구가 여름일 때 남극에 있다. 남극의 여름은 짧기 때문에 엄연히 따지면 북극에 있는 기간이 길다.”


-극지 탐험, 해양 탐험 중 더 흥미로운 탐험이 있다면?

“둘다 행복해 선택하기가 좀 어렵다. 그래도 굳이 선택한다면 바다다. 바닷속에 있을 때 마치 고향에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해변에 자주 갔다. 내가 바다에 너무 오래 있어 부모님이 화낼 정도로 바다를 좋아했다. 지금도 가능하면 매일 수영을 한다.”


새로운 루트로 탐험을 하고 새로운 정상을 발견한 사례가 많다. 2012년 그린란드 탐험에서는 북극에서 가장 높은 산인 군비외른산(Gunnbjørn Fjeld)의 북면을 처음 등반하기도 했다. 조엘 하이츠(joelle Heights), 쥬빌리 정상(Jubilee Peak), 폴의 신기루(Paul's Mirage), 에거 산(Mt Eggars) 등이 있다. 

출처: 폴 로즈 제공

-2012년 그린란드 탐험이 기억에 남는다고

“4월이었다. 동료 5명을 이끌고 동부 해변에서 시작해 스키를 타고 산을 오르는 여정이었다. 한달 동안 275km의 라스무스 랜드(Rasmussen Land) 빙상 경로를 탐험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아무도 횡단한 적 없는 곳이어서 매우 험난했다. 사진도 지도에도 없었다. 또 5주간 군비외른산을 등반했는데, 북면으로 가는 건 새로운 경로였다. 탐험 중반부 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내가 가 본 극지방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고요하고 대단했다. 그때 발견한 곳을 동료 조엘의 이름을 따 조엘 하이츠라 지었다.”


학교 그만두고 기술자로 일하다 탐험가로


-당신만의 독특한 탐험 장비가 있다면?

“집 전체가 장비로 가득하다. 집 보다는 장비 상점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탐험을 갈 때마다 귀마개를 항상 챙긴다. 탐험하는 곳은 늘 어디나 시끄럽다.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 텐트가 흔들리는 소리, 헬리콥터가 이·착륙하는 소리는 숙면을 방해한다. 바다 위에서도 늘 선박 엔진 옆에서 자기 때문에 시끄럽다. 귀마개는 이런 모든 소음을 막아준다. 내 오랜 친구이자 훌륭한 발명품이다.”


-보통 탐험 장비 무게는 얼마나 하나?

“잠수 장비가 굉장히 무겁다. 실린더(공기통), 잠수복 등 여러 장비를 갖춰야 해서 잠수장비를 갖고 가느냐 마느냐에 따라 무게가 결정된다. 등산할 때는 작은 가방만 메고 올라갈 때가 많다. 극지방을 갈 때는 가방이 여러개다. 100kg은 족히 넘는다.”   

출처: 폴 로즈 제공

-목숨을 건 탐험도 있었을 것 같다.

“남극에서 제주도 크기만한 유빙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유빙 밑을 잠수하다 물위로 나오려했는데 머리에 유빙이 닿아 나올 수 없었다.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듬고 호흡을 유지하며 잠수를 하다 결국 물위로 나왔다. 무려 1시간 동안 얼음 바닷속을 잠수했고, 물위로 나왔을 땐 2~3분간 숨쉴 공기 밖에 남지 않았다. 또 한번은 북극곰을 만난 적이 있다. 보통 북극곰을 만나면 도구를 쳐서 소리를 내거나 공중에 총을 쏴서 쫓아낸다. 그날은 바람도 안불고 고요한 자정이었다. 텐트 속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380kg 짜리 곰이 뛰어들어 내 왼쪽 어깨에 착지 했다. 텐트는 일부분 부서졌고 나는 ‘으악’하며 침낭에서 빠져 나와 총을 집어 들었다. 천천히 조심해서 텐트 지퍼를 열었더니 곰의 두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 있더라. 그런데 곰이 천천히 멀어지더라. 곰이 40분 동안 내 텐트 주위를 맴돌다가 갔다. 천운이었다. 그때 너무 긴장해서 몇달간 목뒤가 뻣뻣하게 굳었다.”


영국 런던 엘름 파크(Elm Park)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대거넘(Dagenham)에 있는 포드모터 공장에서 금속가공사로 일했다. 다이버 교육 기관 BASC(the British Sub Aqua Club)에서 다이빙을 배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건가

“그렇다. 학교가 싫었다. 가르치는 방식도, 시설도 낡았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매일 창밖을 쳐다봤다. 뭘 신청하거나 지원할 때 ‘학력’ 항목에 다른 사람들은 대학명을 적지만 나는 아주 조금(very little)이라 적는다.”    

출처: 폴 로즈 제공

-전문 탐험가로 살기 전까지 수입원은 무엇이었나

“어릴 적에는 모터 공장에서 일했고, 미국에 있을 땐 다이빙 사업도 한 적이 있다. 탐험 초기에는 저축 없이 버는대로 모두 탐험하는 데 썼다. 신용카드 빚이 많아 돌려막기도 했다. 카드 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미국에서 있다가 각종 전문 자격증을 따고 전문 다이버, 산악 가이드로 살았다. 과학자를 돕는 가이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1974년 미국으로 간 이유는

“1970년대 영국은 경제가 좋지 않았다. 공장과 제조업체가 파업을 했고 임금이나 여러 조건이 좋지 못했다. 어느날 신문에서 미국 기업이 낸 채용공고를 봤다. 기술자를 원했고 딱 나를 찾는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미국은 매사 활기차고 적극적이었다. 영국에서 동료들은 일이 끝나고 집에서 TV보는 게 다였다. 하지만 미국 동료는 퇴근 후 레이싱을 하거나 클래식 자동차를 개조하는 등 취미가 다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성장한 시기였다. 그러다 1988년 영국으로 돌아가 탐험가로 살기 시작했다.”


-탐험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많지만 경비 등으로 인해 섣불리 도전하지 못하는데

“진짜 이 일이 하고 싶다면 모든 걸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진 모든 걸 팔아야 한다. 탐험가의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때는 그만한 비용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바닥에서 자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 나도 차, 오토바이를 포함해 모든 재산을 팔았다. 모험하지 않는 인생이 지루하다면, 쉽게 모험가가 될 수 있다. ‘내가 알래스카를 등정하고 북극에 가면 이 모든게 필요 없다’ 생각하고 전부 파는 거다.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 그것이 에너지다.”

출처: 폴 로즈 제공

-과거 인터뷰에서 한해 7만5000파운드를 벌려고 노력한다고 했던데, 요즘은 어떤가

“거의 똑같을 거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 있어 얼마나 버는지 확인하진 않는다. 탐험하는 데 필요한 돈만 있으면 상관없다. 내셔널지오그래픽, BBC와 여행하면서 후원을 받지만 사비로 하는 경우도 많다.”


“물고기의 양보다 플라스틱의 양이 더 많아”


폴 로즈는 환경 문제를 논의하는 ‘세계리더스보전포럼 2018’의 세션 ‘미래 세대의 역할 강화’에서 좌장을 맡았다. 그는 수없이 많은 탐험을 하며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를 눈앞에서 지켜봤다. 그 누구보다 심각성을 잘 안다.

출처: 폴 로즈 제공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환경 파괴의 최전선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세계 리더나 정치인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옳은 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를 나열하는 사람보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어떤 정치인이 '인터넷에서 보니 플라스틱이 많다고 하는군요'라고 하기 보다 내가 '지난 49년 동안 수많은 바다에서 다이빙을 했는데, 제가 본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습니다. 수백개 해양 탐험에서 샘플을 채취했을 때 단 한번도 플라스틱을 발견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아직까지 탐험해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심해를 깊숙이 탐험하고 싶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인 마리아나 해구 바닥까지 가고 싶다. 아바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탐험한 적 있는 그곳이다. 강이나 사막, 정글 등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또 제주에 다시 오기로 약속했으니 제주에도 와야한다.”


-언제까지 탐험할 생각인가

“할 수 있는 한 계속 할 거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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