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학교도 못갔던 소년은 연매출 250억 대표가 됐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5: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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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돼지로 연 매출 250억 법니다"
돼지로 250억을 버는 '돼지아빠' 장성훈씨
2011년 구제역으로 돼지 2만마리 묻어
중학교 검정고시생이 돼지 문화원 대표가 되기까지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황금돼지의 해다. 재물과 행운을 상징하는 돼지와 황금이 만났다. 2019년에 어울리는 곳이 있다. 바로 원주에 위치한 돼지문화원이다. 돼지를 컨셉으로 한 복합문화공간인 이곳은 돼지를 음식만이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으로 즐길 수 있다. 돼지의 습성, 품종 등을 배울 수 있는 돼지교육관부터 직접 소시지를 만들 수 있는 체험관, 야외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카라반도 있다.


돼지문화원을 만든 장성훈(58) 씨는 신축생 소띠다. 장 씨는 소처럼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팠다. 근 40년이 넘도록 돼지와 동고동락 했다. 돼지는 게으르고 지저분하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어 돼지문화원을 만들었다. 고생도 많았다. 2011년엔 구제역이 돌아 돼지를 모두 묻었다. 한결같은 그의 돼지 사랑을 주변에서 조금씩 알아주기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지 40년 후, 그는 연 매출 250억을 버는 돼지문화원 대표가 되었다. 

출처: 돼지문화원 제공
장성훈 대표

돼지 아빠가 되기까지


-어떻게 돼지 기르는 일을 했나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중학교를 못갔다.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정식 고등학교 갈 형편이 안 돼 나라에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축산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다. 이후 강원대학교 낙농학과에서 축산을 전공했다.”


-낙농과 양돈의 차이는 뭔가

“낙농은 젖소를 기르는 것부터 우유를 생산하기까지의 모든 일을 말하고 양돈은 돼지를 사육하는 거다.”


-낙농 전공인데 돼지를 기르게 된 이유는

“낙농은 당시 자본이 많아야 시작할 수 있었다. 낙농 쪽에선 채용도 별로 안했다. 그쪽에서 일하던 선배들이 낙농일이 힘들다고 양돈을 추천했다.”


-위장취업을 했다고

“양돈으로 가려고 하니 전공이 축산이라 일 구하기가 힘들었다. 선배를 통해 겨우 어느 양돈업장에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대졸자는 현장 업무를 안했다. 현장을 배우고 싶어서 고졸이라고 속이고 위장취업을 했다. 물론 몇 개월 안 가서 들켰다.


집으로 회사 사람들이 온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대학 졸업했다고 말해버리셨다. 쫓겨나는구나 생각했는데 회사에서는 벌써 눈치치고 있었다. 덕분에 다음 달부터 대졸 임금을 받았다.”

출처: 돼지문화원 제공
장 대표가 사육하는 돼지들

돼지 문화원의 탄생


-돼지 문화원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개인 농장을 운영하기 전까지 여러 농장에서 일했었다. 1990년~1999년까지 꽤 유명한 돼지 농장에 있었다. 그때 일을 잘 해 1992년에 포상연수로 일본 돼지 농장 ‘사이보쿠’에 갔다. 이 농장은 운영하던 중에 온천이 터진 곳이다. 목욕탕 등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6차 산업으로 성공했다. 6차 산업은 농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2차 산업의 가공업과 3차 산업의 서비스업을 합친 거다. 처음으로 돼지를 테마로 한 복합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회사의 허락을 받고 97년 조그만 농장을 마련했다. IMF가 터지는 바람에 주변 농장이 많이 망했다. 이 때 돈을 더 빌려서 망한 농장을 싸게 샀다. 경기가 생각보다 빨리 좋아져 금방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다시 6차 산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일본 모쿠모쿠 농장이 6차 산업으로 각광을 받았다. 몇 차례 방문하며 계획을 구체화했다. 2009년에 땅을 산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돼지문화원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돼지에 대한 좋은 인식을 주고 싶어서 만들었다. 사람들은 돼지가 지저분하고, 머리 나쁘고, 게으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양돈장들도 환경오염의 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인식을 고쳐보고 싶었다.


좀 더 큰 의미로는 양돈업으로도 6차 산업(융복합사업)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돼지를 가공해 돈까스나 소시지로도 만들고 돼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모두 양돈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휴식과 체험의 공간으로 알면 좋겠다. 돼지문화원은 양돈업의 융복합사업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다. 사실은 국가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사업인데 개인적으로 하려니까 힘들다.”

출처: 돼지문화원 제공
돼지문화원에서 소시지 체험을 즐기는 아이들

-돼지문화원 연 매출은 어떤가

“돼지문화원에서 30억~40억원 정도 나온다. 회사 총 매출은 250억원 정도다. 농장에서 200억원, 인공수정센터에서 15억원이 나온다. 인공수정센터의 우수한 씨돼지로 돼지 교배를 한다. 돼지문화원은 100억원 정도 매출이 나올 때까지 키울 예정이다.”


-주 매출은 농장에서 나오나

“생돈유통이 주 매출원이다. 한 마리에 30만원 이하로 판다. 도매용 돼지는 수요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주로 5월~7월에 수요가 많아 가격이 50만원까지 뛴다. 번식이 잘 되지 않은 해는 그 다음 해에 가격이 또 뛴다. 반대로 번식을 많이 한 해는 다음 해에 가격이 내려간다. 그래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많은 수익을 얻으려면 종자돼지를 팔거나 돼지를 도축해 육포나 삼겹살 등으로 가공해야 한다. 종자돼지는 프리미엄이 붙으면 80만원까지 받고 돼지를 가공한 고기는 80만~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아직 농장에서는 가공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키우는 돼지의 10%만 가공한다. 10%도 적은 건 아니지만 도축을 더 많이 해 수익 규모를 늘려볼까 한다.”


-국내 돼지 시장은 얼마 정도인가

“한국의 돼지 사육 규모는 1100만마리다. 우리는 2만2000마리를 갖고 있다. 개인 농장 치고 많은 편이다.”

출처: 돼지문화원 제공
장 대표의 농장에서 키우는 아기돼지들이 엄마돼지의 젖을 먹고 있다.

-돼지문화원 설립 중 구제역이 돌아 힘들었다고

“2011년 1월과 2월에 구제역이 돌아 돼지 2만2000마리를 모두 묻었다. 정부에서 110억을 보상해줬다. 보상금으로 부채를 값고 나니 빈 농장과 돼지 문화원을 지을 땅, 부채 50억만 있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힘들었다.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돌면 피해 회복에 2~3년이 걸린다. 하지만 나는 돼지문화원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농장을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2011년 구제역 이후 돼지 수가 급감해서 돼지가 많이 필요했다. 양돈업계의 사료업체 등이 양돈업 상황이 나아질거라 판단하고 나에게 돈을 빌려줬다. 한평생 양돈업만 했기 때문에 믿음을 줬던 것 같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다시 농장에 돼지를 채울 수 있었다."


-내년이 돼지의 해다. 특별히 계획하는 이벤트라도 있

"여름 가족축제와 10월 도다리 축제에서 이벤트를 할 예정이다. 사진전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가 찍은 돼지 사진이 120점 정도 있다. 1월 중순 이후에 사진전을 열 생각이다. 돼지를 사육하는 현장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글 jobsN 우현수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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