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유관순의 스승 '김란사'는 누굴까
유관순의 스승을 아시나요? 영웅의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스승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유관순의 스승이자, 조선의 등불을 밝힌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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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사는 유관순이 수학한 이화학당의 총교사이자 기숙사의 사감, 이화학당의 서클 ‘이문회’를 활성화했던 인물입니다. 이화학당의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다는데요.
그중 이문회는 매월 3차례 집회를 통해 활동을 했는데, 1909년에는 외부 인사를 초청해 공개 발표를 할 정도로 활발했습니다. 이 공개 활동은 학생들의 민족의식에 큰 자극제가 되었죠
어느 날 밤, 김란사는 이화학당 프라이 선생을 찾아 문을 두드립니다. 양반가 여성인 김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을 하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하지만 규정상 기혼 여성은 입학할 수 없어 거절당했죠.
그러자 김란사는 하인이 들고 있던 등불의 불을 끄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이 지금 꺼진 등불처럼 깜깜합니다. 제게 빛을 찾아주시지 않겠습니까?”라며 절박하게 배우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결연한 의지로 끊임없이 도전한 김란사는 입학에 성공합니다. 사회 통념의 틀을 과감히 깬 여성인 셈이죠. 김란사의 도전은 이화학당에서 멈추지 않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게 됩니다.
이화학당, 그리고 일본에 이어 미국 유학까지 마친 김란사는 어학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최초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는데요.
1909년 고종황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학생을 위해 축하연을 열고 고종황제 은장을 수여했습니다. 최초 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김란사, 여의사 박에스더, 유럽 유학생 윤정원 등 3인은 주목받는 신여성이 되었죠.
하지만 1910년 국권을 상실하자 김란사는 민족의 희망을 일으키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화학당에서는 학생들을 독려하고 국내외를 오가며 민족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고심했는데요.
특히 국내 파이프오르간 설치를 위해 미국을 순회하며 동포들에게 모금 활동을 했습니다. 결국 인민들의 애국심을 모아 정동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파이프오르간 성금 모금이었지만, 이면에는 독립의 희망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금 모금으로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독립의 희망을 전달하는 염원이 더 컸죠.
후에 파이프오르간 지하 송풍실은 독립 운동 관련 문서를 제작, 등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 47세, 3.1운동 직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북경에 도착한 김란사는 저녁만찬 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조국의 등불이 되거라"라고 말하며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가르친 김란사. 깨어있는 감성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조국을 위해 독립을 부르짖었던 그녀의 외침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