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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 일본인 기자

조회수 2019. 03. 16.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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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6월,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첫 입장 발표.
1년 뒤, 아사히 신문 사회면 1면에 하나의 기사가 실렸고
일본 전역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그는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기사를 쓴 것일까?
1978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한 우에무라 다카시.
우리 나라에 관심 갖게 된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판결 반대 시위까지 참여했다.
이렇게 기자의 길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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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 뒤, 1990년.
그는 우연히 한 편의 글을 보게 됐는데,
그것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윤정옥 대표가 쓴 기고문이었다.
그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기자로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신념으로 한국으로 넘어오지만
취재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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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91년 8월.
"한시도 잊은 적 없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리고 숨이 턱턱 막혀요."
"너무 무섭고, 도망을 치다가 잡히고 또 잡히고..."
1991년 8월 11일.
그가 기사를 써서 일본군의 추악한 만행을 폭로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으며
오히려 우에무라 다카시에게 온갖 비난과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위협을 당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 기사를 쓴 건, 저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사실이니까요"
- 우에무라 다카시 -

한 줄 요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을 최초로 보도한 일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해 인정하지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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