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상자 하얀 이탤릭체.. '슈프림'의 시작은 '이 사람' 이었다

조회수 2019. 7. 8.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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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빨간 네모 상자 안에 하얀 이탤릭으로 적힌 글자. 설명만으로도 미국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Supreme)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출처: 사진출처 UNSPLASH

오늘날 프리미엄이 붙기 전 이 로고는 그저 단순한 글씨였습니다. 이탤릭 퓨처라 오블리크(Italicized Futura Oblique) 폰트를 쓰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로고였죠. 하지만 슈프림 탄생 훨씬 이전부터 이 단순한 서체를 자신만의 브랜드로 일군 예술가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출처: fonts.com

그 주인공은 바로 지난 40여 년 간 현대 미술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입니다. 그는 차용한 이미지 위해 텍스트를 병치하는 고유한 시각 언어를 구사해왔습니다. 바로 슈프림 로고처럼 말이죠. 슈프림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는 크루거에서 모티프를 얻어 브랜드 디자인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명 '크루거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 방식은 어떻게 확립된 걸까요?

출처: 바바라 크루거 공식홈페이지

잡지사 편집 디자이너에서 예술가로

바바라 크루거는 잡지 그래픽 디자인, 이미지 편집, 책 표지 디자인 등 프리랜서 업무를 하며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하며 콩데 나스트 잡지사에서 디자이너를 역임했죠. 이후 잡지사 마드모아젤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디자인 실장으로까지 거듭났습니다. 크루거가 예술가로서 첫 시도를 보인 것은 1969년 실, 구슬, 스팽글, 깃털 등 재료를 활용해 벽걸이 작품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재료에 내포된 젠더적 의미를 탈피한 크루거의 작품은 '페미니즘적 공예를 회복했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이렇게 탄생한 초기 작품의 일부는 1973년 큐레이터 마르시아 터커에 의해 휘트니 비엔날레에 소개되었지만 크루거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충분히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는 1975년 작업을 중단했죠. 여기에는 '독립적인 여성'을 환영하지 않던 뉴욕 미술계 분위기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1971년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하는 콜라주 작업을 시작합니다. 10여 년 간 잡지사 편집 디자이너로 근무한 경험이 광고 기법을 활용한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드는데 중요한 근간이 되었죠. 디자인이 디지털화되기 이전까지 크루거는 직접 잡지를 오려 붙이면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옛날 잡지나 사진 도감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가공해 그 위에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굵은 글시로 중첩해 새로운 문맥의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죠. 이런 초기 작업은 '페이스트 업'(paste-up)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그의 작품은 상징적인 서체로 눈길을 사로잡는 만큼 담긴 메시지 또한 간결하고 강렬합니다. 1960년대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크루거. 그는 시를 읽고 쓰면서 카피를 쓰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크루거의 문구는 권력과 통제, 대중매체와 자본주의, 진실의 왜곡과 성 역할의 고정관념 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합니다.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혹자는 상업적인 목적을 띄는 잡지의 표현 방식을 그대로 빌려왔다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바바라 크루거는 이렇게 얘기하죠.

그 기법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역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강력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2019년 12월 29일까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초기 페이스트 업 작품, 대표작, 새로운 시도가 담긴 최근 작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요. 전시에 소개된 작품 일부를 미리 만나볼까요?

네 몸은 전쟁터야
(Your body is a battleground)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1989년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낙태 금지에 반대하고 여성의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대규모 여성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크루거는 "네 몸은 전쟁터야"라는 문구를 반으로 나뉘어 대조를 이루는 여성의 얼굴에 붙인 포스터를 만들어 거리에 붙였습니다.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대부분 남성인 법관들에 의해 낙태법의 결정 여부가 달려있던 상황을 비판하며, 여성들이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크루거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슬로건은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를 낳았죠.

최신 버전의 진실
(The Latest Version of the Truth)

출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쟁, 인종, 계급, 소비, 외모지상주의 등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크루거. 그가 2018년 제작한 신작에서는 성모자상을 배경으로 붉은 테두리에는 싸우지 마시오, 신경 쓰지 마시오, 믿지 마시오, 사지 마시오 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단 하나의 진실'로 대변된 종교에 대한 도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죠.

텍스트로 가득찬 방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크루거는 이전에 존재했던 문구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을 지양합니다. 주로 자신이 떠올린 문구를 사용하지만, 이 작품은 두 개의 소설작품에서 인용된 말로 이루어졌습니다. 쏟아지는 거대한 텍스트를 거닐며 의미를 곱씹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

-'1984' 조지오웰

한글 작품

출처: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전 | 올댓아트 박찬미

바바라 크루거의 최초 한글 작품도 있습니다. UCLA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인 제자를 통해 알게 된 한국이 조형성에 반한 크루거. 그는 '충분하면 만족하라'와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를 제작했습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한 문구를 통해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이죠.

출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외에도 동시대 주요 이슈에 대해 대담하고 적극적인 발언을 이어온 바바라 크루거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바바라 크루거: 포에버> 展
2019.06.27~2019.12.29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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