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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는 원래 욕이었다?- 예술용어에 숨겨진 이야기

조회수 2020. 3. 28. 22: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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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용어 비하인드 스토리로 보는 예술의 역사
고딕, 바로크, 인상주의, 야수파...
여러분, 이런 용어들 한번쯤 들어보셨죠?

우리에게 익숙한 이 예술용어들.
하지만 잘 알려진 예술용어들 속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숨어 있죠.

예술용어들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요?

첫 번째는 고딕(Gothic)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첨탑,
신성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럽여행 가면 이런 성당들 많이 보셨죠?
바로 고딕이라 불리는 건축 양식인데요.
사실 고딕은 야만스럽다는 의미였어요.
유럽에서는 예술의 원형을 고대 로마로 보거든요.
때문에 로마가 멸망한 뒤에도
로마와 비슷한 느낌을 한동안 유지하려고 했구요.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게
9세기에 나타난 로마네스크였습니다.
로마(Roma)라는 나라 이름에
‘양식’이라는 뜻의 에스크(Esque)가 붙어
로마네스크가 되었죠.

그런데 12세기 프랑스에서 나타난 고딕은
전통적인 로마네스크와는 좀 달랐어요.

로마네스크 건물보다 높이가 더 높고 창도 더 크고 많았죠
높이를 지탱하기 위해 두꺼운 기둥들로 건물을 둘러쌌구요.
이런 건축은 신 중심의 사회로 변해가던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높은 건물, 큰 창으로 들어오는 많은 빛
이런 것들은 저 높은 곳에 있는 신의 존재를 상상하도록 했죠.
하지만 로마의 유산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인들은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진 않았어요.

때문에 이러한 건축양식을 ‘고딕’이라고 불렀죠.

고대 로마를 침략했던 이민족 고트인처럼,
로마 건축을 더럽힌 천박한 건축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두 번째는 바로크(Baroque)입니다.

목이 긴 성모 마리아와
길게 늘어진 아기 예수.
남자는 또 왜 이렇게 작죠?
르네상스 회화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좀 이상한 이 그림.
16세기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인데요.
당시 예술가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세상을 보자는 르네상스 운동.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지나며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죠.

하지만 너무 완벽했다는 게 문제였어요.
‘여기에 도대체 뭘 더할 수 있을까?’
후기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고민합니다.
그 결과 17세기 프랑스에서
'바로크' 예술운동이 탄생하죠.
이건 1386년 도나텔로가 만든 다비드상이고
이건 1624년 베르니니가 만든 다비드상인데요.

둘의 차이가 보이시나요?
둘 다 골리앗과 싸운 다비드를
주제로 만든 조각 작품인데요.
14세기의 다비드는 다리 밑에
골리앗의 머리를 두고 으스대고 있죠.

다비드와 골리앗의 싸움은 끝났고
누가 이겼는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17세기 다비드는요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지려는 순간에 멈춰 있어요.

‘다비드가 던진 돌은 골리앗을 맞출 수 있을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음 순간에 벌어질 일을 상상하게 만들죠.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균형미와 조화를 강조하고
가능한 한 작품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다면요.
바로크 예술가들은 밀당을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모든 걸 다 보여주지 않거나
지나치게 과장함으로써
작품 외적으로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르네상스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바로크를 혁신이 아니라 쇠퇴라 여깁니다.
때문에 바로크라는 이름이 붙죠.
이 말은 원래는 경멸의 의미가 강한 말이었어요.

‘찌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바로크가 나왔습니다.

르네상스가 완성시킨 이상적인 예술을
일그러뜨렸다는 의미였죠.

반 고흐, 모네, 르누아르
한번쯤 들어보셨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풍인
인상주의 예술가들이에요.

그런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있어요.
19세기에 등장한 인상주의 예술가들은요
이전의 어떤 예술가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합니다.

형태를 포기하고
예술가의 인상을 담으려 했던 건데요.

이전까지의 회화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상의 형태를 가장 이상적으로 재현하는 거였어요.

바로크도 형태를 일그러뜨리지만
형태를 무시하는 수준으로 가진 않았죠.
그런데 이 그림을 볼까요?
모네의 <인상, 해돋이>인데요.

해가 뜨면서 붉게 물든 하늘과
배를 탄 사람들의 그림자, 일렁이는 물결들.

형태라고 볼 수 있는 건 없지만
해돋이 무렵의 인상을 잘 표현하고 있죠.

하지만 이건 당시 기준으론 너무도 파격적이었고
사람들은 그림이 미완성되었다 여겨 혹평합니다.

프랑스의 한 미술비평가는 이렇게 비꼬기도 했어요.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원래 조롱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었죠.

그런데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이를 자신들을 표현하는 말로 삼아요.

그들의 예술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죠.

인상주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어요.
자연을 충실히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가의 주관이 강조되는 예술로.

때문에 이후의 예술운동은
어떤 공통의 목적을 향해 간다기보다는
제각각의 목적을 가져요.
인상파가 빛에 따른 인상에 집중했다면,

야수파는 색채를 변형하는데 집중했고
입체파는 형태를 해체하는데 집중했고
청기사파는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했죠!
야수파는 본래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색을 무시하고
예술가의 감정에 따라 과감하게 색을 썼어요.

때문에 이들의 그림을 보면 강렬한 원색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충격적인 예술을 본 비평가들은 ‘야수’라 칭합니다.

야수처럼 거칠고 상스럽게 색채를 쓴다는 의미였죠.
그렇다면 입체파라는 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이들은 자연을 정육면체, 원기둥, 구와 같은 형태로 단순화하고,
여러 방면에서 본 시점을 하나로 합치려고 했어요.
이건 최초의 입체파 회화로 일컬어지는 작품인데요.
이 그림을 본 마티스가
“조그만 큐브(cube)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라고 하면서
이 예술운동의 이름(Cubism)이 유래되었죠.

청기사파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표현하려 했던 표현파의 한 갈래인데요.
청기사파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순전히 감정적이었다는 게 재미있어요.

마르크와 칸딘스키는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이 이름을 생각해냅니다.

마르크는 말을 좋아하고
칸딘스키는 기사를 좋아하고
둘 다 파란색을 좋아하니까
‘청기사’라고 하자, 라고 했다는 거예요.

감정을 중요하게 여겼던 예술가들 답죠.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청기사파...
‘모든 시대엔 그 시대만의 예술이 있다’고
이들은 믿었어요.

때문에 과거의 예술과 단절함으로써
새 시대에 맞는 새 예술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생각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이들은
1916년에 등장한 다다(dada)였습니다.
다다 예술가들은 단절 그 자체에 목적을 뒀는데요.
기존의 관습, 기존의 문화, 기존의 제도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파괴하려 했죠.

그들이 추구했던 건 무의미 그 자체였어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예술을 가지고 노는 게
다다 예술가들의 목적이라면 목적이었죠.
때문에 다다라는 이름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독일어 사전을 펼쳐봤더니 우연히 나왔다거나,
그냥 아기들이 하는 옹알이라는 둥의 얘기들만 무성한데요.
이 질문에 다다는 뭐라 대답했을까요?
역시나 아무 말이 없습니다.

다다 이후 지금까지도
새로운 예술운동은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이와 함께 이 운동들을 일컫는 용어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죠.

떄로는 조롱이나 비난이었고,
때로는 재미로,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만들어졌던 용어들.

다른 예술용어들에는
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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