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매우 어울리는 '투명인간' 공포물

조회수 2020. 4. 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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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인비저블맨> (The Invisible Man,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인비저블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주요 영화가 '개봉 올스톱'을 외친 상황에서 유일하게 미국 메이저 배급사가 개봉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인비저블맨>이다.

스릴러, 공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물론, 4월 5일까지 5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성적이 4주 연속 1위 작품치고는 초라한 편이다) 이 영화는 공포 작품의 명가로 떠오르고 있는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 제작했다. <인비저블맨>을 포함해 '로튼 토마토'에서 '프래쉬 인증' 마크를 받은 주요 영화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공포, 스릴러 장르물의 특성상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법칙, 관행 같은 '클리셰'를 다량 첨가할 수밖에 없다면, '블룸하우스'는 그 클리셰를 현시대에 맞게 잘 조리하며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것.
게다가 '블룸하우스'는 철저히 '저예산'의 영화 제작을 지향한다.(한국의 중급 예산 영화보다는 높거나 비슷한 편) <인비저블맨>은 7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전 세계 약 1억 2,450만 달러의 수입을 극장에서 벌어들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수익률을 봤기 때문에 좋아하겠지만, '블룸하우스' 제작사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이야기의 창의력' 때문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5,000만 달러 이상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안전한 기획' 요청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영화 자체에서 오는 신선함은 떨어지며, 심지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 최대한 창작자에게 자율권을 부여할 수 있는 것도 저예산 영화의 장점이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작품은 대형 영화에선 불가능한 소재를 건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겟 아웃>(2018년)으론 흑인들이 받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서, <할로윈>(2018년)은 나이에 상관없이 여성들이 범죄자로부터 느낀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 <어스>(2019년)는 미국 사회가 지닌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산 절감을 위해 '티켓 파워' 있는 몸값 센 배우의 투입보다, 어느 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겟 아웃>을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첫 후보에 오른 다니엘 칼루야나, <할로윈>으로 새턴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이미 리 커티스, 그리고 <노예 12년>(2013년)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뇽을 <어스>에서 활용한 것이 그 대표적 예.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티브'한 감독에 대한 지원이다. <겟 아웃>과 <어스>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조던 필 감독은 생애 첫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으며, 지금부터 소개할 <인비저블맨>의 리 워넬 감독도 <쏘우> 시리즈 각본을 쓰며 성장한 인물이다.

배우로도 종종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쏘우> 시리즈에선 '아담'을 연기했다) 리 워넬 감독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전작 <업그레이드>(2018년)를 통해 <로보캅> 시리즈 등에서 너무나도 많이 써먹은 "전신 마비 남자가 초인이 된다"는 '클리셰'를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해 뛰어난 반전을 보여주었다. 타격감 있고 화끈한 액션은 덤이었는데, 블룸하우스와 차기작 미팅을 하던 중 그에게 다가온 것은 <인비저블맨> 이야기였다.

<미이라>(2017년)를 시작으로 '유니버설 픽처스'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를 이끌었던 공포 영화 캐릭터들을 묶어, 이른바 '다크 유니버스'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떡밥도 많이 보여준 <미이라>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투명인간'이 등장할 것으로 여겨졌던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영화를 만들자는 합의를 거치며 공중분해 됐다. 유니버설 픽처스와 배급권 계약이 있던 블룸하우스의 제이슨 블룸 대표는 리 워넬 감독에게 <인비저블맨> 이야기를 나눴는데, 리 워넬 감독은 이제는 투명인간 소재 작품의 중심축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작품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인비저블맨>은 1897년 허버트 조지 웰스가 발표한 동명 소설(국내에선 <투명인간>으로 발매됐다)을 원작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투명인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감과 두려움을 보여줬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이 다수자가 소수자에, 또는 타자에 대해 가지는 통념을 반영하고자 했다. 투명인간 '그리핀'이 '보이는 존재'를 통해 느끼는 감정이 타자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했던 것.

1933년 처음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영화화된 후, 많은 작품이 나왔지만, 국내 관객들에게는 아무래도 폴 버호벤 감독과 케빈 베이컨, 엘리자베스 슈, 조슈 브롤린이 출연한 <할로우 맨>(2000년)이 더욱 기억에 남을 것이다. 원작에 영감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이 영화는 폴 버호벤 감독의 색채가 적극적으로 묻은 작품이었다.
점점 미쳐가는 과학자 '케인'(케빈 베이컨)이 한 여성을 강간한다거나, 동료들을 연쇄적으로 살인하는 그의 인간적이지 않은 면을 강조했지만, 훗날 폴 버호벤 감독은 자신이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후회된다고 밝힐 정도로 내용은 꽤 부실했다. <인비저블맨>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의 무게 추가 '투명인간'이 된 사람에 있었던 것과 달리, '투명인간'이 집착했던 대상에게 시점이 옮겨진 작품이다.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가 소시오패스 남자 '애드리안 그리핀'(올리버 잭슨 코헨)으로부터 도망치고, 언제 '애드리안'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세실리아'가 보호 주택 밖으로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든 것이 초반부 흐름.

유일한 가족인 언니 '에밀리'(해리엇 다이어)와 친구이자 경찰인 '제임스'(알디스 호지)를 통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던 '세실리아'에게 다시 공포감이 작품의 시작을 함께하던 파도처럼 밀려온다.

'애드리안'이 자살해 막대한 유산을 '세실리아'에게 남겼다는 것, 그 유산을 온전히 상속받으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애드리안'의 동생이자 변호사인 '톰 그리핀'(마이클 도어맨)으로부터 받게 되는 그사이, '세실리아'에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무언가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정체가 보이지 않는 것.
'세실리아'는 과거 '애드리안'이 꾸준히 자신에게 주입했던 말("네가 있는 곳을 반드시 찾겠지만, 너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이나 그가 광학 분야 선구자라는 점, 그에게 도망칠 때 잃어버렸던 약통이 집에 있는 것 등을 토대로 '애드리안'이 살아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실리아'가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토대로 '정신 문제'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애드리안'은 '세실리아'를 믿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차단시켜버린다.(후술할 이 작품의 주제를 연상케 한다) 이로 인해 '세실리아'는 범죄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갇혀버린다. 정신병원에서 '세실리아'는 투명인간을 잡기 위한 사투를 펼친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실리아'가 밝힌 투명 인간의 정체는 '톰'이었다. 이 장면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애드리안'과 '톰'이 꾸며낸 일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세실리아'를 '애드리안'의 소유물로 만들어버리기 위한 작당이었던 것. '투명인간 슈트'가 한 벌이 아니라는 복선이 '세실리아'가 몰래 '애드리안'의 집을 조사할 때 등장한다.

당연히 '세실리아'를 괴롭히던 '투명인간'은 한 명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락방에서 몰래 대기하고 있다던가, '에밀리'를 교묘히 '세실리아'가 한 것처럼 살해하던 '애드리안'과 달리, CCTV가 다량 설치된 정신병원에서 대놓고 경비원을 죽이던 '톰'의 스타일은 달랐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최근 국내에서 가장 큰 사회적 이슈 두 가지를 연상케 한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공포인 '코로나19'와 관련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다. 이른바 'N번방 범죄'로 불리는 이 성착취 범죄는 '세실리아'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범죄자들의 모습은 '애드리안'과 '톰'의 그것을 연상케한다.

그리고 '몸통처럼 보이는' 가해자 몇 명만 잡혔을 뿐, 끊임없이 피해자들을 숨 막히게 하려는 시도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염려되고, 우려되는 것은 다시 범죄자는 추가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는 추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에게 '악마'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으로 치켜세우려고 하거나, 피해자들에게는 다 당할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이상한 사연을 붙여버리는 것. 그리고 "나는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이 사건을 쉬쉬하고 덮어버리려고 한다는 점이 있겠다. <인비저블맨>의 리 워넬 감독은 여기에서 어쩌면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반전을 선택한다.

'톰'이 가해자라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될 법도 하지만, '세실리아'는 '톰'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눈치채 '애드리안'의 집으로 향한다. '톰'은 죽었지만, 자신의 목적 자체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에 '애드리안'은 다시 '세실리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당연히 '애드리안'은 '세실리아'에게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투명인간이 휴대폰과 목소리로 남겼던 "서프라이즈"를 다시 사용하는 '애드리안'을 보며, '세실리아'는 '애드리안'이 투명인간이었던 것을 확신한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투명인간 수트'를 입고 '애드리안'을 살해하며, 복수에 성공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을 엿들으며, 누가 '애드리안'을 죽였는지 눈치챈 경찰 '제임스'는 왜 '세실리아'를 체포하지 않았을까? '세실리아'의 평소 품행을 지켜봤으니, '애드리안'에게 묶여 사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나아 보인다는 일종의 '정당방위'라고 본 것이었을까?

영화는 '세실리아'가 자유롭게 해방되는 것처럼 묘사되며 막을 내린다. KBS 시사보도 프로그램 <시사직격>은 "N번방의 비극,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소개했었다.

비록 영화처럼 현실에선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를 할 순 없겠지만, 가해자가 '가해자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 '유명 인사'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고('애드리안'도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것만 잡아뗄 뿐, 이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그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는 있다는 무언의 경고를 영화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2020/02/29 메가박스 목동 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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