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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잡아먹느냐? 연봉 얼마냐?" 남극 요리사의 대답

조회수 2020. 7. 13.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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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기지에서는 펭귄 잡아먹냐고요? '남극의 셰프'가 있습니다

“남극 대원이라고 하면 다들 몰아치는 눈바람 속에서 텐트 치고 라면 끓여먹는 장면을 상상하세요. 사실은 한국에서보다 더 잘먹습니다. 한국에서 똑같이 먹었으면 1인당 식비가 1달에 100만원은 나왔을 거에요. 남극 기지는 랍스터·전복·스테이크 등 식재료가 풍부합니다. 대원 분들이 남극 와서 잘 먹는 바람에 살쪘다고들 말씀하세요.”

요리 대회에 출전한 모습

김인태(24)씨는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의 식사를 책임진 일명 '남극의 셰프'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글로벌경제학과를 휴학하고 1년 동안 요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작년 11월 장보고 과학기지 조리보조에 지원해 남극으로 떠났다. 5달 동안의 남극 생활을 끝낸 그는 쇄빙선을 타고 적도를 넘어 올해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언제 처음 요리에 관심을 가졌나요. 


“중학교 때 만화책 ‘식객’을 읽고 푹 빠졌습니다. 20권이 넘는 시리즈를 3번이나 읽었어요. 그때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고3 수능이 끝나고 요리를 잠시 배웠어요. 대학에 입학하면서는 잊고 살았죠.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진로를 고민했어요. 전공이었던 경제학은 저랑 안 맞았습니다. 고민 끝에 제가 제일 재밌게 했던 일은 요리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대 후 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요리를 제대로 배웠습니다. 한식조리사자격증도 따고 미슐랭 셰프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참가했죠. 요리 대회에도 몇 번 나갔어요. 복학을 하고도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꾸준히 요리를 했죠.” 


-남극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요. 


“남극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는 내용의 SF 소설을 읽고 남극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남극 기지에서 요리사를 뽑는지 찾아봤습니다. 조리장은 20~30년 경력을 가진 사람만 지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매년 조리보조도 1명씩 뽑더군요. 올해는 언제 공고를 낼거냐고 직접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9월에 뽑는다길래 기다려서 지원했죠.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쳐 합격했습니다. 면접에서는 요리 경험뿐 아니라 남극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고 관심이 있는지도 많이 물어봤어요.”

출처: 본인 제공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일할 당시 모습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2019년 11월 4일 기지에 도착했습니다. 겨울 동안 장보고 과학기지에 머무르는 월동대원이 18명 정도에요. 이때는 조리장 혼자서 식사를 책임집니다. 하지만 남극의 여름인 10월~2월에는 세계 각국에서 80~100여명의 연구원이 기지로 옵니다. 이 기간에는 조리보조가 함께 일하죠. 처음 2달은 다른 보조가 1명 더 있었어요. 셋이서 100여명의 끼니를 책임졌습니다. 12월부터는 저와 조리장 2명이서 80인분 식사를 준비했어요.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대원들의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연구 활동용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주 7일 하루 12시간씩 일했어요. 정신없이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나면 하루가 끝납니다. 또 중간중간 식재료를 배에서 옮겨오기도 하고 시설 유지·보수 일도 도왔어요. 월동대원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월부터는 기지 인원도 줄고 즉석식품 보급도 들어오면서 주말마다 쉬는 시간이 생겼어요.” 


-식단은 주로 한식인가요. 


“다양합니다. 대원들은 외부 활동이 많기 때문에 든든하게 먹어야 합니다. 물론 신선한 야채나 과일은 먹기 힘듭니다. 하지만 다른 식재료는 오히려 더 풍부했어요. 랍스터나 조개류 같은 해산물이 다양했습니다. 가까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고기류를 사 오기 때문에 한국에서 잘 못 먹는 스테이크도 많이 먹었어요. 김치나 한우 같은 한국산 식재료도 쇄빙선을 타고 대량으로 들여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장보고 기지에서 김씨가 조리장과 함께 준비한 식사들

다들 남극에서 일하면 힘들고 못 먹어서 살이 빠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대원 분들은 남극 와서 잘 먹는 바람에 살쪘다고들 말씀하시죠. 저도 평소에 사용해보지 못한 고급 식재료로 요리를 해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다른 대원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월동대는 연구반과 유지반이 있습니다. 연구반은 대기·해양·생물 등 남극 생태계를 연구하죠. 유지반은 기지 시설을 책임집니다. 발전·용접·중장비 관련 베테랑 기술자분들입니다. 월동대는 한 번 기지에 들어오면 보통 1년정 도 있습니다. 여름 동안 머무르는 하계 연구대는 다양한 곳에서 옵니다. 대학 연구팀이나 방송팀 등이죠. 제가 있는 동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도 촬영했어요.” 


-기지 생활은 어땠나요. 


“남극 최북단 킹조지섬에 있는 세종과학기지와 달리 장보고 과학기지는 남극 대륙 본토에 있습니다. 날씨가 더 춥고 주변에 다른 나라 기지도 거의 없죠. 기지 자체는 2014년에 지은 신축입니다. 시설 부분에서 불편한 건 없었어요. 난방도 빵빵하기 때문에 실내 온도도 20도 이상입니다. 또 인터넷 속도가 남극에서 제일 빠른 편입니다. 외국 기지 연구원들이 오면 늘 부러워했어요. 다들 오면 와이파이부터 찾았습니다. 사실 한국 인터넷이 300배 빠르지만 남극에선 그래도 초고속입니다.

출처: 본인 제공
남극에서 찍은 사진

가기 전에는 갇힌 공간에서 사람들과 오래 생활하니까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서 그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힘든 점도 많았죠. 3달쯤 지났을 때부터 한국 일상생활이 너무 그리웠어요.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친구들 만나서 영화 보고,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들이요. 남극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죠.”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요. 


“하계 연구대로 온 넷플릭스 촬영팀 3명 가운데 1명은 해산물을 못 먹고 나머지 2명은 채식주의자였어요. 식사 때마다 음식을 따로 준비하고 재료는 뭐가 들어갔는지 설명했습니다. 외국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죠. 또 남극 생활을 유독 힘들어하는 대원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그래도 밥이 맛있어서 먹는 낙으로 산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한국 어린이들과 화상 통화하는 모습

남극에 있는 동안 한국 어린이들과 화상 통화를 한 적이 있어요. 부산에서 열린 극지체험전 전시 관람객들과 Q&A 시간을 가졌죠. 매번 나오는 질문이 “남극에서는 펭귄을 잡아먹나요” 였어요. 또 부모님들은 “연봉이 얼마냐”가 단골 질문이셨죠.


또 기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만화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님이 계셨어요. 차기작을 위한 취재를 하고 계셨죠. 같이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았어요. 그 작품은 3월부터 연재 중인 다음웹툰 ‘어린’입니다. 찾아보니 작게나마 저도 등장하더라고요.” 


-급여가 궁금합니다. 


“저는 조리보조로 기본급 월 250만원을 받았습니다. 추가로 받는 극지위험수당도 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직접 찍은 남극 펭귄과 해표 사진. 김씨는 실제로 보면 펭귄보다는 해표가 더 귀엽다고 한다

-귀국할 때는 쇄빙선을 타고 왔다고요.


“갈 때는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언 바다 위에 있는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리죠. 남극에서 나올 때는 원래 뉴질랜드까지만 쇄빙선을 타고 옵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뉴질랜드에서 한국행 비행기가 없었어요. 언제 뜰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쭉 쇄빙선을 타고 적도를 거쳐 전라남도 광양항으로 들어왔습니다. 40일이 걸렸어요. 중간에 파푸아뉴기니에서 한국 어선이 침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탄 배에 선원분들을 태워 오기도 했어요.” 


-앞으로 계획은요.  


“학기가 3학기 남았습니다. 일단 복학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정한 계획이나 진로는 없어요. 사실 1년 전만 해도 제가 남극에서 요리사로 일할 거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었을 겁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해볼 생각입니다. 다만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면서도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요리처럼요.”


글 jobsN 오서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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