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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차 커리어 우먼이 만든,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 '헤이조이스'

조회수 2020. 9. 23. 14: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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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우먼들을 위한 멤버십 커뮤니티, 헤이조이스 이나리 대표

1,200명.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리어 성장 플랫폼 헤이조이스가 정식 런칭된 지 2년 만에 달성한 유료 멤버십 회원 수입니다. 이 공간에서 멤버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멋진 성장과 성공을 끝없이 꿈꿉니다.


그 시작점은 한 사람이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고도 남을 기간 내내 꾸준히 일을 해온 이나리 대표의 삶 전체에 걸친 고민이었습니다. 여성이지만, 결코 누군가의 딸, 부인, 엄마로만 불리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과연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헤이조이스를 만들게 된 걸까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하는 여자들의 멤버십 커뮤니티 헤이조이스를 가꾸어 가고 있는 이나리입니다. 2018년 4월에 창업했으니 헤이조이스의 대표라는 직함을 단 지는 어느덧 2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온 28년 동안 퇴사를 10번 하고, 직종도 크게 3번 정도 바꾼 일명 '프로퇴사러'였습니다.

Q. 헤이조이스를 만들기 전까지 어떤 커리어를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20년 정도를 기자로 보냈습니다. 언론계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마지막이었어요. 이후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를 만들고 운영했습니다. 재단을 나와서는 제일기획에서 3년간 신사업과 투자를 담당하는 임원으로 일했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분이 맥락 없는 와중에도 커리어가 성공적이고 화려해 보인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저를 잘 아는 분들은 프로퇴사러라는 타이틀은 물론이거니와, 기자 경력이 길다 보니 언론계에서 이력서가 가장 지저분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Q. 정말 다양하고 많은 곳을 거치셨는데, 시니어가 되기까지 여성으로 지나온 직장 생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인제 와서 돌이켜 보면 저는 오랫동안 꼰대였던 것 같아요. 여성 혹은 한 아이의 엄마라는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애를 많이 썼거든요. 가끔 여자 후배들이 사회생활에 관한 조언을 구하면 남자와 똑같이 평가받으려면 120%, 더 잘한다고 평가받고 싶으면 150%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대부분 남자였던 선배들이 "나리야, 너는 생긴 것만 여자고 완전 남자다"라며 칭찬 투로 말하면 뿌듯해했어요.


그러면서도 오히려 여성으로 인식돼서 당해야만 했던 부당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2, 30대였을 때는 남자 여럿과 여자 한 명이 노래방에 가면 그중에 본인과 블루스를 꼭 춰야 한다고 우기는 남자들이 있었어요. 이제는 남성들도 젠더와 관련된 문제에서 조심스러워진 편이지만, 그때만 해도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들을 하나하나 클리어해내야만 했어요.


그렇게 남성 위주로 세팅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종종 과잉적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적당히 맞춰 주거나 거절할 줄 알아서 남자들 입장에서 관계가 껄끄럽지 않은, 그래서 같이 일할 만한 여자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센서를 10개 정도 켜고 살았던 겁니다.


분명히 신경이 곤두서 있는 채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건데, 저는 늘 아무 문제 없다는 듯한 태도로 저를 속여 왔어요.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나에게 무척 미안했어요.


그래서 저 같은 현재 중년 혹은 그 이상의 여성 시니어들이 후배들에게 꼭 좋은 롤모델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부담이자 걸림돌이 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선배로서 100% 일을 했으면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게 똑같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저처럼 당연히 120%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상한 선배들이 종종 있으니까 정상적이고 일반적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런 이상한 선배의 대표주자가 과거의 저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헤이조이스는 여성 시니어로서 느끼는 책임감에서 시작된 건가요?


사실 개인적인 동기가 더 컸습니다. 연차가 어느 정도 되다 보니 근 몇 년간 다양한 곳에서 이 일을 맡아 주셨으면 좋겠다, 이 자리를 맡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중요한 인터뷰 자리만 가면 꼭 지금까지 일을 해 오면서 여성이라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냐는 질문이 들어왔어요. 저는 예전에 '2, 30년 정도 경력을 쌓고 확실하게 역량을 보여주면 여자라서 어떻냐, 어떻다, 어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여전히 비슷한 질문이 나오는 걸 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겁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열심히 살았는데도 저는 50살이 다 되는 마당에 어리다는 평가를 듣는 거예요. 규모 있는 조직을 이끌 수 있느니 없느니부터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니 없느니까지, 온갖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더는 사회적 프레임에 저를 꾸겨 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루는 그 생각을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간단하게 글로 남겼습니다. 놀랍게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일어났어요. 좋아요는 3,000개 가까이 나오고, 댓글도 200개 가까이 달렸습니다. '내가 젊을 때 일했던 예전보다 상황이 훨씬 좋아졌을 텐데, 왜 이렇게 반응이 좋지?' 싶어서 '그럼 우리 같이 차라도 한잔할까요?'라고 두 번째 포스팅을 올렸어요.


그러고 나서 밋업 아닌 밋업을 진행했는데, 저는 당연히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워하는 워킹맘분들이 많이 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한 번 놀랍게도 70%에 가까운 참가자가 자녀가 없거나 아예 비혼이신 분들이었어요.


저는 그 밋업의 참가자 구성이 제 예상과 달랐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을 대상으로 일과 기회와 사람을 불러오는 퍼스널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같은 여성 리더의 절대적인 수가 적다 보니 믿고 따를 선배나 동료를 만나기 어려워요. 설사 리더가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명 나타나도 그분들이 각자도생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나 한국은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는 퍼스널 네트워크 문화가 중장년층 남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성들로서는 끌어주고 밀어줄 나와 비슷한 존재를 찾을 기회가 애초부터 적은 셈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라면, 이 문제 역시 창업을 통해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헤이조이스입니다.

Q. 헤이조이스가 '여자들의 커리어 성장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띠는 만큼 여성 창업가로서 같은 여성 창업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한국의 벤처 캐피털에서 일하는 여성 비율이 7~9% 내외라는 통계가 있어요. 투자자 대부분이 남성인 셈인데, 그분들에 따르면 여성 창업가들은 미팅이나 발표에서 자신감 없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신 있게 말해도 설득이 될까 말까 싶은데,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는 등 자꾸 수세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답답하다고 해요.


오랜 시간에 걸쳐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 혹은 잘한다, 아니면 나는 야망이 있다는 표현을 대놓고 하면 안 된다고 학습한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내 안의 틀을 깨야만 여성들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창업가를 기존의 것을 버리거나 뒤집고,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파괴자 혹은 전복시킨 자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내가 다루는 무언가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해요. 위험해서, 조신해 보이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로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오며 살아온 여성으로서는 그런 사고방식 측면에서 창업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실제로 성공한 창업자로 불리는 사람 중에서 여성은 극소수라서 적절한 롤모델이나 멘토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향후에 그들이 성공한 창업자의 대열에 설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산업적 변화·혁신에 큰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시야를 더 넓혀서 세상의 모든 일하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 전체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우선, 여성들이 '내 일과 삶으로 이만큼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니 이제 아이도 낳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삶을 사는 데 어느 정도 만족하기에, 아이를 낳아도 안전할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출산과 육아를 계획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이 높아진 정도만큼 주변 사람에게 갖는 이유 모를 죄책감은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독 여성들은 가족을 꾸리면 부모님, 남편, 자녀에게 늘 미안해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나다운 삶을 살려면 내 욕구나 야망에 충실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와 동시에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어해요. 분명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다 가져가려다 보면 결과가 두려워져요. 두려움이 쌓이다 보면 결국, 차선책 혹은 차악, 극단적으로는 최악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고요.


이건 남성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누구나 주인으로서 내 인생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용기인 것 같습니다. 설령 무언가 실패해도 잘하고 싶고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후회를 덜 할 거예요. 꼭 헤이조이스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이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라고,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친구 같은 커뮤니티를 가지길 바랍니다.

👆🏻일하는 여성들의 삶을 말하는 헤이조이스의 CEO 이나리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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