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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11살·17살 대수술 이겨낸 아이는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1. 02. 07.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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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싸우는 보건소 의사, 심장병 앓던 소년이었다
세 번에 걸친 수술 끝에 건강 회복
해운대구 보건소 근무하며 환자 돌봐
환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의사 되고 싶어

선천적으로 두 가지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심장 왼쪽의 중요한 두 부분인 대동맥과 승모판이 좁아진 채로 태어났다.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세 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어려서부터 병원에서 지낸 시간이 많아 소년에게 ‘선생님’ 하면 학교 선생님보다 ‘의사 선생님’이 더 먼저 떠오를 정도였다. 그랬던 소년이 현재는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가 됐다. 해운대구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는 신승건(40) 건강증진과장의 이야기다.


“제가 앓던 병은 대동맥 축착과 승모판 협착입니다. 대동맥과 승모판이 좁아진 병이었어요. 기억은 거의 없지만, 세 살 때 대동맥 축착을 바로잡는 수술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승모판의 좁아진 부분을 넓혀주는 수술을 받았는데요. 그때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 승모판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은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신승건 해운대구 보건소 건강증진과장

◇수술 전날 밤, 불 꺼지지 않는 의학도서관 보고 의사 꿈 키워


세 번에 걸친 수술 끝에 현재는 건강을 되찾았다. 몇 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심장 상태를 점검해야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체력이 달릴 수밖에 없다. 공부도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경쟁이 불리한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에 합격했다. 2006년 2월에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세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들어가기 전날 밤, 초조한 마음에 자정이 넘어가도록 잠들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병실 창문 너머로 한밤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이 보였습니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께 물어보니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의학도서관이라고 하셨어요. 그때 뭔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도 저기 의학도서관에 있는 의대생들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의사면허를 취득했는데 바로 병원에 들어가지 않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생각해보니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휴식기를 가졌던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쉬면서 남들의 속도에 맞추어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다수의 동기가 졸업 후 가는 길에서 잠시 벗어났지만,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출처: 본인 제공
어린 시절 모습(위)과 초·중·고교 졸업식 당시 사진

-이후에는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사실 저는 교수가 되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약이라고 생각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던 거죠.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서 마주한 현실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연구하기 위해서 교수를 하는 게 아니라 교수가 되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이들로 가득했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 내가 하려는 게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의료 상담 회사 창업···미용 상담 위주로 변해 과감히 정리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상에서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의료 상담 사이트를 만들었다. 상담 외에 부가적으로 의사들에게 기고받은 칼럼을 기재했는데, 포털 메인에까지 소개되면서 하루에도 수만명이 사이트를 찾았다. 그렇게 한동안 낮에는 대학원생으로서 약물을 연구하고, 밤에는 프로그래머로서 사이트를 운영했다. 그러다가 사이트를 더 키워보고픈 생각에 대학원을 그만두고 2010년 회사를 창업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놓인 시공간적 제약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사실 문명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는 상식 중의 상식인데요. 의료계에서는 이 상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어요. 의사는 편하게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환자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의사를 찾아가야 하죠. 그리고 이 현실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환자가 있는 곳에서 의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의사가 환자 한 명 한 명을 찾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환자 곁에 의사를 대신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이를 실현해보고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어떤 회사였나.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의료 상담이 주된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스마트폰이 등장했어요. 스마트폰이 막 일상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재빠르게 의료 상담 기능을 스마트폰 앱으로 옮겼습니다. 말하자면, 초기 형태의 원격 의료를 시작했죠.” 

출처: YTN 캡처, 본인 제공
회사 운영 당시 방송에서 서비스가 소개되기도 했고(왼), 서울 외 다른 지역에서도 회원으로 가입한 병·의원이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담 내용을 살펴보니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미용 상담이 주를 이뤘다. 회사의 방향이 초기 구상했던 것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3년 만에 회사를 접었다.


“미용 상담이 주를 이뤘지만, 사실 수익성 면에서는 괜찮았습니다. 맨 처음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회사를 일 년 만에 정원이 있는 사옥으로 옮길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원격 의료 회사라기보다는 마케팅 회사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까요. 나중에 그 순간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외과 전문의 자격 얻은 후 2018년부터 보건소 의사로 근무 중 


회사를 정리하고, 왜 이런 일이 생겼을지 곰곰이 이유를 곱씹어봤다. 결국에는 원격 의료라는 분야를 다루기에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면허는 있었지만 임상 경험, 다시 말해 실제로 환자를 진료한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임상 경험을 쌓고자 병원 수련을 결심했고, 2013년 초 한 공공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출처: 본인 제공
외과 레지던트로 일할 때 모습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2018년 2월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수술과 약물 처치 등 임상 분야의 여러 면을 두루 경험하기 위해 외과를 선택했어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제가 갈증을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고, 언젠가 다시 원격 의료의 길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임상의 어느 단편이 아닌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판단에서였죠.”


그가 전문의로서 환자를 만나기 시작한 곳은 해운대구 보건소였다. 현재 그는 의사이자 공무원이다. 2018년 5월 해운대구 보건소에서 진료 의사로 공직에 발을 들였고, 같은 해 11월 건강증진과 업무를 시작했다. 현재는 코로나19 선별 진료와 검사를 주로 하고 있고, 자가격리자들의 비대면 진료도 겸하고 있다. 


-대학병원 의사가 아닌 보건소 의사를 선택한 이유는. 


“주변에서도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인데요. 제가 공직의 길을 택한 이유는 군대에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만약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다면 과연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어요. 아마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나고 자란 나라에 무언가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에겐 그것이 입대였지만, 심장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군에 입대할 자격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항상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었고, 그 마음이 짐이 저를 공직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제가 배운 것을 활용해 누군가를 사심 없이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타 의사와 비교해 수입은 낮지만, 그게 아쉽지 않을 정도로 일에서 얻는 보람이 큽니다. 근래에는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보면서 보람과 안타까움, 책임감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출처: KBS 캡처
코로나19 관련 진료를 하면서 여러 차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환자의 눈높이로 돌아가 환자들 진료하고파


지난해 말에는 ‘살고 싶어서, 더 살리고 싶었다’라는 책을 냈다. 심장병을 앓던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차곡차곡 책에 담아냈다.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저에게는 딸 아이가 한 명 있는데요. 제 딸을 비롯해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또 책을 통해서 환자와 의사는 질병 치료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책이 심장병이 있는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심장병이 있는 어린이들에게 선입견을 품고 계신 분들이 있고, 저 역시도 선입견 때문에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 책이 어린이들에게는 ‘너희들도 잘 해낼 수 있어’라는 용기를 주는 것과 동시에 세상에 ‘저 아이들도 잘 해낼 수 있어요’라는 설득으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는. 


“세상에는 다양한 의사가 있는데요. 잘하는 것도 다들 다릅니다. 훗날 누군가가 저에게 너는 무엇을 잘하는 의사냐고 묻는다면, 저는 환자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의사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제 삶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환자에서 의사가 된 것이 저의 첫번째 도전이었다면, 다시 환자의 눈높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저의 두번째 도전입니다.” 


글 jobsN 박아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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