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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6잡러' 프리랜서의 삶

조회수 2021. 03. 09. 0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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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홀린 듯 집어 든 책이 있었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브런치에서 여러 글을 재미있게 봤던 서메리 작가의 책이었다. 일반 사무직으로 회사를 다니다가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프리랜서로 서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서메리 작가는 일반 사무직에서 번역가로 완전한 커리어 전환을 이뤘다. 6개의 분야에서 활약중인 서 작가는 누군가 일을 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분야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프리랜서 6년 차, 6개의 직업을 갖다

“안녕하세요. 서메리입니다. 책을 쓰기도 하고, 번역도 하고, 소개도 하고, 책에 들어가는 그림도 그려요. 기본적으로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여섯 개의 직업을 가진 ‘6잡러’로 알고 있어요. 뭐가 있었죠?


작가, 번역가, 출판사 대표, 유튜버, 강사, 일러스트레이터요.


혹시 이 중에서 메인으로 생각하는 정체성도 있으세요? 


평소에 소개할 때는 그냥 “작가 겸 번역가”라고 소개하고, 하나를 딱 꼽아달라고 할 때는 “번역가"라고 소개해요. 퇴사하고 프리랜서계에 입문한 첫 번째 직업이니까요. 저는 번역가라는 직업을 뿌리로 삼아서 다른 것들을 확장해온 케이스예요.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작가님의 책을 보면, 회사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권위적인 문화나 비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 절차를 본인과 안 맞는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만약에 회사가 좀 더 자유롭고 수평적인 곳이었으면 좀 달랐을까요?


제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라는 책까지 내다보니, “죽어도 다시는 회사에 안 갈 건가요?”란 질문을 종종 받는데요,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이나 요즘 생기고 있는 업종은 저도 체험을 안 해봤어요.

다만 직원 3~4명인 회사부터 3,000명인 곳까지 다녀보면서 느낀 건, 좋은 조직이어도 조직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어요. 그게 잘 안 되면 답답해해요. 일이 잘 안되면 그냥 제가 해버려야 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게 예의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안 될 때도 많잖아요. 뭐가 우월하고, 열등한 게 아니라 제 속도대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초반에는 '백수' 였습니다

지금 프리랜서 한 지 몇 년 되셨어요?


퇴사한 직후부터 치면 6년 차인데요. 초반에는 백수였기 때문에 지금은 4~5년 차라고 볼 수 있죠. 1년~1년 반은 백수였어요.


그래도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 않아요?


백수의 기준을 수입으로 잡았어요. 퇴사하는 순간부터 계속 뭔가 했지만, 저는 용돈 벌려고 프리랜서 한 게 아니라 진짜 생계를 유지해야 했으니까요. 집세도 나가고, 식비도 나가고.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있잖아요. 


제가 백수 기간을 1년~1년 반으로 잡은 건, 그 기간에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공부하고 도전한 기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 돈을 썼죠. 번 게 없었어요. 벌어봤자 일주일 내내 일하고 10만 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어요. 수입이 0원이었던 게 1년. 아주 조금 있었던 게 6개월. 그리고 그 뒤부터는 최저 생계비라도, 어쨌든 제가 저축해둔 돈에 손 안 대고 생활할 수 있었어요.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저는 스스로 프리랜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뭔가 시작하기 앞서서 계획을 잘 세우고 움직이는 편이세요?


디테일한 계획까지는 안 세워요. 너무 디테일하게 세우면 시작이 어려워지더라고요.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세울 수도 없고요. 세상에 완벽이란 건 없잖아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어떻게 배우고 시도할까. 큰 틀에 대한 계획과 이게 망했을 때 어떻게 하자는 계획을 세워요. 플랜 B, 플랜 C가 세워지면 그냥 시작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적도 많지 않아요?


당연하죠.(웃음) 안된 게 더 많죠. 하하.

잘난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프리랜서 계에는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어요. 제일 잘난 사람이 아니라 무조건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요. 


그런데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요즘 느껴요. 여기저기 찔러보고, 안 되는 일이 진짜 많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뭔가 하나가 자리 잡히고 나니까 그 이후에는 제가 실패했던 일들이 오히려 제 특장점이 되는 거예요. 그냥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출판사를 직접 운영해본 번역가. 유튜브를 해본 번역가. 이런 게 다른 경력이 되더라고요. 실패한 일들도 시너지로 끌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경험도 많이 쌓이고요.”


1인 출판사 대표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당시에는 기회로 연결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일이 있었어요. 지나고 나니 여러 점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더라고요. 번역가가 되기로 하고, 번역 일감을 받을 수 있는 온갖 루트를 다 찾아봤어요. 그중에 하나가 1인 출판 카페예요. 제가 1인 출판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여기 있는 출판사 사장님들한테서 일을 따보려고 가입을 했어요.


그거랑 완전 별개로 저축해둔 돈이 떨어져서, 작은 회사에서 계약직 사무직으로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제 막 창업하려는 회사라 그때 본의 아니게 사업자 등록 과정을 경험하게 된 거예요. 남의 회사를 세우면서. 사업자 등록, 법인 카드 만들기 등의 절차를 진행해봤어요.

번역 공부는 계속하고 있었고요. 그 뒤로 한참 시간이 지나서 저는 의욕은 넘치는데, 아무도 저한테 일을 안 맡겨 주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는데, 창업 도우면서 배웠던 사업자 등록 과정, 가입해두었던 카페, 번역. 이런 것들이 딱 하나로 연결되면서 ‘그럼 내가 출판사를 세워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 거죠.


일이 되게 만들려고 진짜 열심히 찾아다니신 것 같아요. 백수 시절이라고 정의하셨던 그 1.5년의 기간이 흥미로워요.


각각의 길을 이렇게 연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당시에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저는 좀 많이 찔러보고 다니시라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남들이 가르쳐주지 않은 어떤 길이 보일 수도 있거든요. 번역 공부도 했지만 블로그에 일상툰도 그리고, 전자책 만들고, 출판사 운영하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때 시작해서 지금 일로 연결된 것도 많아요.

내가 몰랐던 나

“무엇이든 도전해보세요. 저에게 조언 구하거나 질문하는 분들이 “저는 뭐를 못 해서 할 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해요. 출판 번역가가 되고 싶지만, 글을 못 쓴다. 유튜브 찍고 싶은데 카메라 앞에 못 선다. “못하기 때문에 못 한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그래도 그냥 한 번 해보세요. 직접 안 해보면, 잘하는지 못하는지조차 모르는 거니까요.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할 수도 있거든요. 한 번 해봤는데 진짜 소질이 없으면 그때 접어도 되잖아요.”


메리님은 그럼 최근에 ‘못하는 줄 알았는데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 게 있었어요?


코딩? 공부를 하고 있다기보다는 관심있는 분야예요. 사실 조금은 해봤어요. 전자책을 만들었으니까. 그게 html로 만들거든요.


와, 전자책이 html로 만드는 건 줄 몰랐어요.


네.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전자책 아니면 PDF로 만들 수 있어요. 다만 PDF로 만들면 글자 크기 확장도 안 되고 스크롤도 안 돼요. 저는 가로, 세로로 보느냐, 휴대폰, PC로 보느냐에 따라서 포맷이 자동으로 최적화되길 원했기 때문에 코딩해서 전자책을 만들었어요. 이거 누구나 하루 만에 할 수 있어요. (웃음)


뭐 하나 꽂히면 파고드는 스타일이신가 봐요.


그렇죠. 그래서 회사 체질이 아니었어요. 제가 그냥 해버리고 싶은 거예요.

회사생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기간

휩쓸리지 않고 내가 할 일들을 잘 찾아서 여러 갈래의 길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메리님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기간이 있나요?


지금은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의 대표주자가 되어 6잡을 뛰는 프리랜서가 됐지만,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건 회사 생활을 한 그 시절이에요. 내가 평생은 버티지 못할 확률이 100%인 곳에서 그래도 5~6년의 시간을 버티고 나왔잖아요. 근데 이걸 내가 1년을 못 버텨? 6개월을 못 버텨?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거예요. 


뭔가 실패하거나, 내가 한 선택이 틀렸다는 게 분명해도, 애초에 저는 회사에 들어가는 선택도 틀려 봤잖아요. 한 번 강하게 틀려봤던 사람이라서, 그래도 살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요.


회사 한 번도 안 가보고, 졸업하고 바로 프리랜서 도전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도 자주 받아요. 저는 어떤 기술이나, 명확한 비전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본인이 조금이라도 헷갈리는 상태면 회사를 들어가 보라고 일관되게 조언해요. 그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생각한 건데,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었어요.



회사에 다니면 경험과 능력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생기잖아요.


맞아요. 나온 뒤에도 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처럼 회사 다닐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책이나 원고를 쓸 때 마감 날짜만 지켜서 드려도 출판사 분들은 되게 놀라요. 애초에 몇 달은 늦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주고요. 사실은 창작의 영역이니까 내 마음처럼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수가 있잖아요. 그래도 저는 데드라인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에요. 그게 이 바닥에서는 더 특이한 포인트고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출처: 서메리 씨 유튜브

프리랜서가 된 뒤로 제일 좋은 점은 뭔가요?


제 속도대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이요. 많은 분이 제 속도대로 일하는 걸 천천히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약간 카모메 식당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웃음)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더 빨리 일할 때도 있어요. 완전 반대로 평일에 쉴 때도 있고요. 오전에 오늘 일하기 싫으니까 그냥 놀아버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럼 그 대가로 그날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되잖아요. 이걸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다능인(多能人)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다능인’이라는 말에서 ‘능’이 능력이라는 뜻이잖아요. 능력이 많은 사람. 그 능력이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이 있는 것 같아요. 웬만큼 잘해서는 안 되고, 눈에 띄게 대단한 면이 있어야 그걸 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압박감을 주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자신이 다능인이라는 생각을 못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 능력이 엄청 사소한 데부터 올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예를 들면 제 능력의 출발점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취미였어요. 책을 써본 적도 없고, 그거에 대해 대단한 공부를 한 적도 없고요. 틈이 나면 책 읽는 게 좋아서 그냥 읽었거든요. 근데 거기서 모든 길이 시작됐어요.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요리, 달리기, 요가.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내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능력이거나 능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글=정혜윤]


이것저것 하고 싶은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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