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학과 졸업한 행시 합격자, '스님'이 되다

조회수 2021. 3. 11. 10: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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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39회 행정고시 합격,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하다 1997년 출가.

지난해 말 출간된 ‘인도 네팔 순례기’(민족사)는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668쪽의 두툼한 책은 불교 유적에 대한 종교, 예술적 분석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통찰을 담아냈다.


무엇보다 저자 각전 스님(54)의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39회 행정고시 합격,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하다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1997년 대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 현재 동화사, 통도사, 범어사, 쌍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


스님들의 겨울 집중수행 시기인 동안거(冬安居)와 여러 사정이 겹쳐 전화로 각전 스님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출처: 동아일보

―오래 전 얘기지만, 어떻게 출가를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제가 85학번인데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시대 분위기에 따라 대학 1, 2학년 때에는 마르크스 책을 보면서 갈등을 많이 느꼈다. 4학년 때 종교적 체험을 한 뒤 성경과 도덕경, 불경을 공부했는데 불교에서 진리의 사다리가 보이더라.”


―어떤 체험인가.


“빛을 봤는데 개인적인 체험이라 자세히 언급하기는 그렇다.”


―그러면서도 행시에 합격해 해수부에 근무했는데….


“갈등으로 아무 것도 못하는 체험이 아니었고, 오히려 집중이 잘 돼 공부가 잘 됐다(웃음).”


―해수부에 들어간 뒤 곧 출가해 집안의 충격이 컸을 것 같다.


“6개월 정도 공무원 생활을 하다 확실하게 길이 보여 출가했다.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으셨고 오랫동안 연락드리지 않았다. 5년 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뒤 간병을 하면서 관계가 좋아졌다. 출가했지만 뒤늦게 효도할 기회가 생겼다.”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


“2009년 중국 구화산과 선종 사찰을 순례했는데 출가 뒤 첫 해외 경험이었다. 대나무 통을 통해 좁게 세상을 보다기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본 느낌이었다. 그 기쁨이 한 달 정도 가더니 곧 사라지더라. 2012년 인도의 7대 불교 성지를 다녀온 뒤 순례기를 쓰려고 했는데 글이 나가지 않더라.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2014년 인도 중부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산치 대탑을 포함해 순례여행을 다녀왔다. 책 쓰기로 마음먹은 뒤 8년 만에 출간했다.”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불국기’를 쓴 법현 스님(337~422)이 중국에서 출발할 때 60세였다. 실크로드를 지나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동료들이 많이 희생됐다. 스님은 쇠잔한 불교 유적을 보면서 부처님 살아계셨을 때 오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저 역시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느꼈다. 네팔 석가족을 만나면서 부처님이 진리의 상징이자 역사적 인물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세상에 온 부처님도 제행무상(諸行無常·세상 모든 행위와 존재는 늘 변해 고정된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음)에 따라 가셨다는 것이다.”


―은사는 어떤 분이었나.


“지난해 12월 90세로 입적(入寂·별세)하셨다. 모악산에서 10년, 지리산에서 10년 씩 두 번, 토굴 생활만 30년 하면서 평생 정진한 분이다.”


―어떤 가르침이 기억에 남나.


“늘 화두를 열심히 들어 본래면목을 깨치라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참고 용서하라는 인욕(忍辱)을 강조하셨다.”

―진리의 사다리를 타고 어디까지 온 것 같나.


“이제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너무 소박한 표현 아닌가?


“그게 중요한 경지인 것 같다. 범어사 조실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동산 스님이 신심(信心) 있는 사람이 왔다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셨다는 말이 전한다. 신심이 중요하다.”


―선방에서 수행하는 수좌(首座) 생활, 나이 들수록 어렵다고 하던데.


“처음부터 사찰의 행정 등을 맡는 주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부처님 제자로 마음 공부를 더 가다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다. 책을 쓰고 강연하는 것도 그런 방법이 될 것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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