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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업체? '자본주의의 매운맛' 보여준다..돈으로 혼쭐날 것"

조회수 2021. 4. 11. 08: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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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0월 9일 울산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소방관 수십 명이 외제차가 전시된 실내에서 쉬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10월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에 있는 한 벤츠 전시장.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전시장 1층 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잠시 쉬고 있다. 스타자동차 제공

사진 속 장소는 벤츠의 국내 공식 딜러사인 ‘스타자동차’ 전시장이었다. 길바닥에서 쉬는 소방관 1300여 명을 보고 해당 업체가 당일 영업까지 포기해 가며 자사 전시장을 휴식공간으로 내어준 것. 


심지어 이 회사는 소방관들에게 1000만 원 가량의 식사와 간식까지 대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연을 알게 된 누리꾼들은 “돈쭐을 내주러 가자”며 해당 업체 위치를 공유했다.

착한 업체 홍보하고 팔아주는 문화 ‘돈쭐’

돈쭐은 ‘돈’과 ‘혼쭐’을 결합한 신조어로, ‘돈으로 혼내준다’는 의미다. 어감만 보면 나쁜 뜻 같지만, 실제로는 ‘그 가게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로 해석할 수 있다. 


돈쭐을 주도하는 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MZ세대다. 이들은 약자를 돕고 사회에 기여한 곳의 제품을 적극 구매한다. 온라인에 훈훈한 미담이 공유되면 그 주인공을 ‘돈쭐 내줘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예컨대 ‘○○가게 사장이 몇 년 째 미혼모를 돕는 일에 남몰래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숨 쉴 틈 없이 돈을 벌게 해주자’ 같은 식이다. ‘△△기업이 제품 페트병 위를 감싸던 라벨 플라스틱을 없앤 덕분에 재활용이 쉬워졌다. 자본주의의 매운맛을 보여주자’ 같은 애정 어린 농담을 덧붙이기도 한다. 


실제로 결식아동에게 무료로 파스타를 제공하는 파스타 가게 사장, 형편이 어려운 형제를 도운 치킨집 사장, ‘마스크 대란’으로 온갖 업체가 앞다퉈 마스크 가격을 인상할 때 시중가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마스크를 판매한 한 중소기업 등이 ‘돈쭐’의 대상이 됐다.

돈쭐 내 준 업체나 기업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게 감시하는 것도 MZ세대 몫이다. 대학생 한소라(24) 씨는 “돈쭐은 내가 가진 자본이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회 곳곳에 선한 영향을 미친 이들에게 보상해주는 한 방법”이라며 “돈쭐을 내줄 때는 해당 업체가 정말 진정성을 갖고 선한 행동을 한 건지, 시류에 편승해 마케팅 차원에서 흉내만 낸 것인지 등까지 꼼꼼히 살핀다”고 말했다.

마음에 들면 적극 밀어준다, ‘착한 오지랖’

전문가들은 공정과 정의를 중시하며 ‘선한 오지랖’을 지향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돈쭐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한 오지랖은 ‘선하다’와 ‘오지랖’을 결합한 신조어로, ‘착한 유난’을 의미한다. 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펴낸 책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을 통해 제시한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5개 중 하나다.


MZ세대의 선한 오지랖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영업글’이다. 영업글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자기가 아는 유용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행동을 이르는 신조어다. 그런 글로 인해 작성자가 소개한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영업당했다’고 한다.

아니다 싶으면 칼같이 '가불구취'

MZ세대의 적극적 소비 행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가불구취’도 꼽을 수 있다. 가불구취는 ‘가치관과 불일치하면 구독 취소’의 줄임말이다. 온라인 채널에 자기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구독 취소라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가치관은 재미와 감동, 정보의 유용성은 물론 사회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예컨대 성차별 문화를 조장하거나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콘텐츠, 불공정한 방식으로 광고를 하는 콘텐츠 등이 이용자의 질타와 외면 대상이 된다. 


MZ세대는 구독을 취소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 채널 영상 이제 안 본다” “오늘부터 구독 취소”라는 글을 남기며 가불구취 운동을 널리 알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가불구취를 콘텐츠 업계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했다.

"MZ세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단순히 ‘돈줄’ 취급은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소비자로서 자기 권리를 누리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선한 오지랖을 지향하는 MZ세대가 만들어낸 돈쭐·영업글·가불구취 문화는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동아 2021년 4월호 발췌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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