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소설가가 60대 후반 어머니와 '스페인 식당' 차린 이유

조회수 2021. 4. 19. 10:5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밥은 먹었어?’라는 질문이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안부를 묻는 일이라면, 최대한의 안부를 묻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가 천운영(50)에게는 밥을 해 먹이는 일이 바로 그런 행위였다. 직접 만든 음식이 꿀떡꿀떡 누군가의 배 속으로 넘어가는 모습, 주방을 나갔다가 깨끗이 비어서 돌아온 그릇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별안간 글이 아닌 밥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쎄요. 이게 제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인가 보죠.”


천운영이 스페인 음식을 주제로 쓴 산문집 2권을 지난달 잇달아 출간했다.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문학과지성사) 이후 7년 만이다. ‘돈키호테의 식탁’(아르테)에서는 2013년 스페인에서 그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와, 소설 속 스페인 음식에 빠지게 된 사연을 풀어놨다. ‘쓰고 달콤한 직업’(마음산책)에는 2016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연 스페인 가정식 식당 ‘라 메사 델 키호테’(돈키호테의 식탁)를 2년간 운영하며 겪었던 일을 담았다. 천 작가를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천운영 작가는 “앞으로 경험한 일을 토대로 ‘팩션(faction)’ 소설을 써보려고 한다. 최근 공부하고 있는 진화생물학 관점에서 인물을 관찰하고 실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은희경 작가가 가족을 데리고 식당에 온 적이 있는데, 네 살 난 손자가 그러더라고요. ‘이 집 음식 좀 하는데!’”

16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6년 전 세상을 떠나자 천 작가는 문득 ‘식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잘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어쩐지 불특정 다수에게 밥을 해 먹이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식당은 사소하면서도 새로운 기쁨을 매일 안겨줬다.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동료의 가족을 만나는 일, 선배 작가 딸의 새로운 남자 친구를 선배보다도 먼저 만나보는 일, 그리고 함께 주방에서 일했던 어머니에게 행복한 또 하나의 시절을 선물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요리사 기질을 심어준 것은 어머니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은 밤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집에 오면 어머니는 칼로 요술을 부려 순식간에 술상을 차렸다”고 했다. 지켜보는 딸은 답답했지만 ‘찾아온 사람은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지론. 60대 후반에 식당 주방에서 낯선 나라의 요리를 하는 고생을 하고도 어머니는 ‘연남동 시절의 우리’를 말할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책을 쓰면서 ‘연남동 시절의 어머니’를 글로 기억할 수 있게 된 점도 좋았어요.”

‘쓰고 달콤한 직업’은 그곳에 머물렀던 작가, 배우, 건축가, 고양이들의 인터뷰집으로 읽어도 재밌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스페인 각 지방의 음식을 따라가는 ‘돈키호테의 식탁’은 스페인 음식 여행기 혹은 ‘돈키호테’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가이드북 같다.

7년간 본업을 게을리 하며 불안하진 않았을까. ‘감이 떨어졌구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는 “식당을 하기 전에는 글을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정제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슬슬 타성에 젖기 시작하는 시기에 식당을 닫았다는 그는 소설 쓰기에 있어서도 긴장 없이 자기 복제 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그에게 집에 있는 재료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스페인 음식을 하나 권해 달라고 했다.

“딱딱해진 바게트를 먹다 남은 와인에 적시고 계란물 입혀 프라이팬에 부치면 스페인식 프렌치토스트인 ‘토리하스’가 완성됩니다. 한가한 주말 아침 크림이나 설탕을 얹어 커피 한잔과 함께 즐겨보세요. 잠시나마 스페인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 거예요.”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