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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PB의 고민 "PB도 유튜브에 밀려나버린 세상"

조회수 2021. 04. 25. 06: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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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활황 속 PB는 행복할까

최근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 유례없는 투자 열풍이 불었다는 걸 감안하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얘기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증권사 PB는 투자환경이 많이 바뀐 건 사실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유튜브나 주식 리딩방을 통해 직접 정보를 얻는 투자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더스쿠프가 증시 활황에 묻힌 증권사 PB의 고민을 들어봤다.

출처: 뉴시스

2020년 우리나라를 관통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주식투자였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증시가 폭락하자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어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중복 제외)는 914만명으로 집계됐다. 2019년 614만명과 비교해 300만명(49%)이나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가 5183만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인구 10명 중 2명이 주식에 투자한 셈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직업군이 있다. 투자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증권사 PB(프라이빗 뱅커)들이다. 주식시장이 뜨겁게 불탔던 지난해 증권사 PB들도 환호성을 질렀을까. 현장에선 지금의 주식 열풍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 강남의 중심가에서 현직 증권사 PB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희(가명·56)씨를 만났다. 김씨는 증권사 PB로 32년을 버틴 베테랑이다. 인터뷰를 허락한 증권사 PB의 요청으로 관련 정보는 모두 익명으로 처리했다.

✚ 증권업계 발을 들인 것은 언제인가.

“1988년 지금은 사라진 A증권사에 입사했다. 32년 동안 증권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 국내 증권업계의 변화를 모두 겪었을 것 같다.

“그렇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칠판에 주가지수와 그래프 등을 직접 그려가며 고객에게 주식을 설명했다. 그러다 컴퓨터가 등장했고,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 비슷한 연령대의 PB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50대 이상의 PB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 왜 그런가.

“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회사를 위해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하고, 고객의 수익도 생각해야 한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월 1500만~2000만원의 성과를 올려야 한다. 성과를 위해서는 고객이 맡긴 투자금을 계속 돌려야 한다. 문제는 매수와 매도가 잦아지면 고객의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상승장에선 주식을 보유하는 게 고객의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PB들이 매매를 통해 받아가는 수수료가 줄어든다. 더 많은 수수료를 벌기 위해선 주식을 계속해서 사고팔아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PB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는 커지지만 고객의 수익률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PB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같지 않다는 얘기다.”

✚ 지난해 코로나19로 증시가 폭락한 이후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투자자가 많이 늘었다. 증권사 PB를 찾는 고객도 많아졌나.
“사실 큰 변화는 없다. 증권사 PB를 찾는 고객은 소득이 어느 정도 안정돼 있는 계층이다. 개인투자자가 증가했다고 무조건 고객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되레 고객을 유치하는 게 더 어려워진 것 같다.”

✚ 왜 그런가.

“주식시장의 투자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PB를 통해 투자종목을 선택하거나 주식을 거래하는 고객이 많았다. 이 때문에 5~6년 전만 해도 고객의 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통화를 많이 하는 날엔 5~6시간씩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 어느 정도인가.

“많아 봐야 10통 미만이다. 그것도 연령대가 높은 고객이 대부분이다. 다른 고객들은 스마트폰에 깔린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로 거래를 한다. 혼자서도 쉽게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주식투자 과정에서 PB의 역할이 많이 줄었다는 거다.”


✚ 그래도 투자종목을 선정하고, 시장을 분석하는 건 전문가인 PB의 몫 아닌가.

“꼭 그렇지도 않다. 요즘은 증권사 PB보다 더 똑똑한 고객이 숱하다. 과거와 달리 정보의 비대칭성도 많이 줄었다. 유튜브나 주식 리딩방처럼 투자종목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도 많다. 특히 많은 투자자가 유튜브를 이용해 투자종목을 선택하기도 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PB의 의견을 ‘팩트체크’ 정도로만 활용하는 고객도 많다. 예전처럼 어떤 종목이 좋다고 추천해도 그 말만 믿고 베팅하는 투자자도 많지 않다. 증권사 PB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 이런 분위기가 수익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증권사 PB의 수익은 크게 매매 수수료, 대출 수수료, 상품판매 수수료로 나눌 수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요즘은 대출 수수료와 상품판매 수수료가 주를 차지하는 것 같다. 매매 수수료가 줄어드는 만큼 수익은 적어질 수 있다. 물론 PB 각자의 역량이 큰 차이를 만든다.”


✚ 직접 투자에 나선 고객이 늘면서 PB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예전엔 직접 종목을 추천하는 등 고객을 적극적으로 따라오게 만들었다. 요즘은 투자에 필요한 조언을 하거나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역할이 커졌다. 이런 변화를 좋아하는 PB도 많다. 추천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PB에게 책임을 돌리는 고객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투자자가 직접 선택한 종목에서 손실을 보면 누굴 탓하기 어렵다.”


✚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나.

“스스로 ‘주식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PB들이 오히려 더 잘나간다. 주식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PB들이 속된 말로 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산을 관리하는 집사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 주식투자 열풍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당연하다. 주식투자는 전 국민이 하는 게임이 됐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다.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이 제일 재미있지 않은가. 유동성은 넘쳐나는데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어려워졌다.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경제를 살리는 데도 주식이 낫다.”


✚ 증권사 PB의 역할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주식투자는 게임이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스스로 해야 한다. 재미있는 게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직접 투자하는 투자자가 늘수록 PB는 할 일이 줄어든다. 앞으로는 고객의 자산과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주는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 마지막으로 투자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주식투자 열풍이 불고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주식을 마음껏 즐기는 건 좋다. 하지만 제발 여유자금으로 투자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투자를 즐길 수 없다. 경험상 돈에 쫓겨서 하는 투자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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