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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숫자놀음 창업펀드의 민낯

조회수 2021. 04. 26.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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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펀드 현주소

최근 몇년간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발표하는 내용이 있다. 다름 아닌 창업펀드 조성액수다. 이번 4ㆍ7 서울ㆍ부산 보궐선거에서도 창업펀드는 뜨거운 이슈를 일으켰다. 몇몇 후보가 ‘조 단위’가 넘는 창업펀드를 조성하겠다며 장밋빛 구호를 외쳐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따져볼 게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출자해 운용 중인 창업펀드의 ‘내실’은 어떠냐는 거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자료를 보면 ‘덩치’는 커졌다.[※참고: 창업펀드는 벤처펀드의 일부다.]

2016~2020년 신규로 결성된 벤처펀드 결성액은 24조원이 넘고, 신규로 결성된 조합수는 806개에 이른다. 표면적 수익률도 나쁘진 않다. 2011~2020년 청산한 벤처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5.7%였다.

하지만 이 자료에선 알 수 없는 게 있다. 어떤 펀드를 어떤 기업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투자를 통해 성장한 기업은 몇개인지, 기업공개(IPO)를 했다면 이후 현황은 어떤지, 투자를 했어도 실패한 기업들은 얼마나 되며 왜 실패했는지 등이다. 규모, 수익률 등 창업펀드의 ‘겉’에만 신경 썼을 뿐 정작 그 펀드의 내실을 알 수 있는 평가보고서는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가 창업펀드의 부실한 숫자놀음을 취재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청년 창업펀드 1조원을 조성하겠다(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글로벌 창업펀드 1조2000억원을 조성하겠다(박형준 부산시장).” 지난 4월 7일 열린 서울ㆍ부산 보궐선거 당시 두 사람이 내놓은 공약이다. 창업지원정책에 불을 지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눈여겨볼 점은 두 사람 모두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창업펀드 조성’을 내걸었다는 거다. 이는 창업펀드를 통한 지원이 창업시장 활성화에 효과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선 참고할 게 있다. 조 단위 규모로 창업을 지원하는 펀드는 흔치 않다. 순수 정부 예산이 재원인 모태펀드기금에서 출자하는 펀드나 2018년부터 서울시가 출자한 미래혁신성장펀드(올해 2월 기준 2조1000억원ㆍ2022년까지 조성) 정도다.

모태펀드기금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2005년 중소벤처기업부 등 10개 부처의 출자로 탄생했다. 당시 자금은 5조6000억원이었는데, 정부는 모태펀드 운용을 위해 설립된 한국벤처투자에 이 자금을 위탁했다.[※참고: 모태펀드(Fund of Funds)는 개별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투자조합에 출자해 간접적으로 투자한다. 정부가 중소ㆍ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방식의 펀드를 일컫는다.]

어쨌거나 ‘창업펀드의 효과성’에 관해선 투자업계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벤처투자(VC)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창업펀드에 출자하면서도 운용은 주로 전문 운용사에 맡기고 있다. 펀드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스타트업이 후속 지원 걱정 없이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의 마중물이 없었다면 현재의 유니콘 기업들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정부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기업, 공공기관에 수많은 창업펀드가 조성돼 운용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신규로 결성된 벤처펀드 결성액은 24조253억원에 달한다. 결성된 신규 조합수만 806개다. 지난해에도 6조5676억원이 새로 결성됐다.

그간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4월 16일 중기부는 2011년부터 2020년 사이에 청산한 벤처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이 5.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0년엔 역대 최고수익률인 9.1%를 기록했다. 평균 회수 기간은 6.8년이었는데, 100억원을 투자했다면 약 7년간 매년 5억원 이상의 수익을 냈다는 얘기다. 창업펀드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성과지표만으로 창업펀드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례를 보자. 2013년 파티게임즈(게임 스타트업)는 정부가 출자한 모태펀드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2014년에 코스닥 시장에 화려하게 상장했다.

펀드 수익률이 전부 아니야

하지만 그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6년 만인 2020년 상장폐지됐다. 상장이 폐지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일명 라임사태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2019년 국내 최대 헤지펀드였던 라임자산운용이 손실을 숨기기 위해 자사가 운용하던 펀드들끼리 서로 전환사채(CB)를 사고팔아 수익률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파티게임즈는 수익률 조작에 악용됐다.

모태펀드는 파티게임즈의 상장으로 수익을 냈을지는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파티게임즈라는 기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창업펀드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펀드를 어떤 기업(업력ㆍ규모ㆍ업종 등)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투자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몇개인지, 상장 이후 현황은 어떤지, 투자를 했어도 실패한 기업들은 얼마나 되며 왜 실패했는지 등을 다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장단점을 따져 문제점도 개선할 수 있다. 더구나 창업펀드에 출자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출자금은 국민 세금이다. 그러니 공익적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목표대로 가고 있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문제는 이런 부작용들이 있음에도 창업펀드 운용을 분석하거나 평가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서울시는 2011년부터 3년간 녹색기업 창업펀드에 총 460억원을 출자해 스타트업을 지원했는데, 2011~2012년 이미 청산된 펀드의 평가 자료가 아예 없다.[※참고: 이 내용은 파트2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뤘다.]

물론 나름의 한계가 있긴 하다. 창업펀드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출자금은 일부여서다. 중기부 관계자는 “민간자본이 함께 투입되는 구조여서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자금이 일부란 이유만으로 펀드에 돈만 넣고 뒷짐을 지고 있기엔 곤란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출자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아서다. 중기부에 따르면 벤처펀드(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의 출자 구성비는 모태펀드(18.5%), 정책금융(15.2%), 연금ㆍ공제회(14.1%) 자금이 47.9%에 이른다.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금융기관(16.1%)까지 합하면 64.0%에 달한다. 말하자면 벤처펀드의 절반 이상이 공적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다. 

출처: 뉴시스

종합하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제대로 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게 창업펀드의 현주소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창업펀드를 악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부 자금이 들어간 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았던 한 벤처기업 창업가는 “인맥을 활용해 투자를 받고, 이를 통해 또다른 펀드 투자를 이끌어내는 걸 속칭 ‘눈 굴리기’라고 하는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면서 “심지어 펀드 유치 컨설팅을 해주고 뒷돈을 받는 곳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뒷돈이라고 해도 컨설팅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지만 세금이 출자된 ‘눈먼 돈’을 빼먹는 편법임은 틀림없다”고 꼬집었다.

눈먼 돈’ 된 창업펀드의 결함

투자 회수 기간이 길다는 것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펀드의 투자와 회수는 7~8년에 걸쳐 이뤄진다. 집권 여당이 재선에 성공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관리되기 어렵다는 거다. “조 단위의 창업펀드를 조성해 창업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은 창업펀드에 얼마나 많은 돈이 몰렸는지 홍보하는 데 급급하다. 정작 펀드 운용현황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펀드 규모만 늘린다고 창업시장의 투자가 활성화하고, 유니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할 수 있을까. 벤처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펀드 규모가 늘어나는 건 긍정적이지만 내부적으로 평가를 하지 않는 건 문제다. 좀 더 꼼꼼하게 관리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일부라도 국민 세금으로 운용하는 펀드 아닌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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