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보내는 가처분 통지문에 왜 고소인 주소가 들어가야 할까?

조회수 2021. 4. 28.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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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크레용팝 멤버 웨이는 ‘악플러 고소하다 주소 노출 이사해버렸어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악플러에게 시달리다 결국 고소했는데 법원이 악플러에게 보낸 가처분결정정본에 자신의 집주소가 노출돼 보복당할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이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싶지 않은 악플러의 주소와 제 주소가 떡하니 있는 거예요.”

-유튜브 웨이랜드WayLand

유튜브 댓글로 “법원이 발송하는 가처분결정정본에 왜 고소인 주소가 있어야 하는지 취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가처분법원이 행하는 일시적인 명령이다.

악플러를 상대로 ‘접근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 법원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에게 “악플러는 ○○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가처분결정정본을 발송하는데 여기에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이름과 주소가 기재된다.

이름은 그렇다치더라도 주소까지 적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개인정보이기도 하거니와 주소가 노출되면 보복범죄 등의 2차 피해도 우려되는데.

변호사들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는 주소가 아니라 지인의 집이나 사무실 주소 같은 다른 주소지를 적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복의 우려가 있는 경우라든지 다른 사유로 인해서 주소를 알려주고 싶지 않다 이런 사유가 있을 때 아파트 동호수를 정확히 기재하지 않는다든지 개인적 주소가 아니라 사무실이라든지 회사 등의 주소를 기재해서 소장을 작성하는 때도 있습니다.”

-박정호 변호사

이렇게 해도 허위기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민법 18조를 보면 주민등록법상 주소와 민법상 주소는 관련이 없고 주소는 동시에 두 곳 이상 있을 수 있다고 조문에 있기 때문에 아주 허위의 주소를 두지 않는 이상 가능하다고 보이고요.”

-박정호 변호사

보복범죄 우려 때문에 실제 거주지를 안 적는 경우가 있을 정도인데 왜 굳이 가처분결정정본엔 주소를 기재해야 할까.

가처분결정정본에 이름과 주소를 적는 이유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명확하게 특정하기 위해서다.

소송 절차는 상대방에게 관련 서류를 보내는 ‘송달에서부터 시작된다.

민사집행규칙 제203조의4결정의 송달’을 보면 ‘신청에 대한 결정은 당사자에게 송달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이때 이름이나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으면 누가 누구에게 소송을 했는지 혼동을 줄 수 있다는 거다.

‘재판서 양식에 관한 예규’ 9조에도 ‘판결서에는 당사자 등의 성명과 주소를 기재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가처분결정정본 뿐만 아니라 민사소송 판결문에도 원고와 피고의 주소가 모두 노출된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이 드는 지점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특정하고, 송달을 위한 목적이라면 양측의 주소는 법원만 알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피고소인에게까지 고소인 주소를 공개를 해야 하는 건지…. 

대법원에 문의했고 서면으로 답변을 받았는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이 대목. 

‘현재 법원행정처에서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판결서에서 주소 기재를 삭제하는 방안을 비롯하여 위 예규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서면 답변

대법원에서도 가처분결정정본이나 판결서에 당사자들의 주소를 적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민사소송 및 집행 절차에서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연구’에도 소송 절차에서 범죄 피해자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 정보를 별도 서면으로 제출하게 한 오스트리아와 범죄 피해자가 동의를 얻은 제3자의 주소로 기재할 수 있도록 한 프랑스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변호사 출신의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장에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민사소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지난해 발의한 상태다. 

“ 민사소송 절차 과정에서 여러 민감한 정보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김남국 의원

김남국 의원은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개인 정보를 소장 내용과 분리하는 ‘당사자 표시서’를 만들어 비공개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개인정보, 민감 정보를 소장 내용과 분리해서 ‘당사자 표시서’라는 개인정보를 따로 담는 서류를 만들고 소장 내용과 분리해서 제출하도록 한 다음에 이런 개인 정보를 비공개 신청할 수 있도록”

-김남국 의원

법의 지향점은 결국 사람을 향해있다. 법을 보다 효율적으로 집행하려는 시도가 혹시라도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면 우린 이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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