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뷔'라는 예술

조회수 2022. 3. 28. 13:5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얼굴은 명화

뷔는 탈이 좋다. ‘탈이 좋다’는 주로 배우에게 쓰는 표현이다. 어떤 배역이든 소화할 수 있는 ‘천의 얼굴’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뷔의 얼굴에는 시골 아이 같은 해맑음과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하는 서늘함이 동시에 서려 있다. 쌍꺼풀 없는 큰 눈에는 광기와 순수, 호기심과 권태가 반짝인다. 별명은 CG처럼 잘생겼다는 의미의 CGV지만, 큰 이목구비와 다부진 턱이 이루는 드라마틱한 선에는 고전의 고전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1위, 지구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100인 등등 얼굴과 관련된 국내외 차트에서 뷔는 다 짱을 먹었지만, ‘잘생겼다’는 표현은 뷔의 ‘탈’을 설명하기 마땅치 않다.

'run' 뮤직비디오 캡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HYBE

뷔의 탈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앨범 3부작의 두 번째 타이틀곡 ‘Run’(2015)의 뮤직비디오를 꼽고 싶다. 청춘의 방황과 일탈을 담은 이 뮤직비디오에서 뷔는 심연처럼 혼탁한 물속에서 몸부림치는 연기를 한다. 내내 숨 가쁘게 내달리던 영상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뷔가 물보라를 가르며 고요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순간, <화양연화>는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뷔의 얼굴에는 서사가 있다. 카메라 안에서 그는 작품이자 시인이 된다.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轉 ‘Tear’>(2018) 앨범에 실린 뷔의 솔로곡 ‘Singularity’에서 서사는 더욱 깊어진다. ‘Singularity’는 나르시스 신화를 차용해 자아와 페르소나의 비대칭을 이야기하는 아주 세련된 슬로 템포의 R&B 곡이다. ‘Singularity’ 뮤직비디오에서 뷔는 나르시스의 현신이 된다.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질 만큼 화려하고, 깊고 고혹적인 마술 같은 저음으로 신화를 소환해낸다. 이 곡을 작사한 RM은 가사를 세 시간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작곡한 찰리 제이 페리(Charlie J. Perry)는 미국 <빌보드> 매거진과 한 인터뷰에서 완성된 노래를 들은 후의 감상을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이었다.”라고 표현했다. 뷔는 창작자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다. ‘Singularity’가 담아낸 음악, 기획, 연출, 패션, 퍼포먼스 모든 것은 개기일식처럼 숙명적으로 정렬하며 상업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극치를 찍는다.

2019년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Singularity’ 무대를 봤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명계의 신 하데스가 연상되는 과장된 블랙 퍼 코트를 입고 문드러진 붉은 장미색 벨벳 침대에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는 뷔의 얼굴이 거대한 전광판에 가득 들어찬 순간, 관객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잠실 서울종합운동장 30여 년 역사에서 가장 조용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환호가 한 박자 늦게 터졌다. 뷔는 예술가이며, 예술 그 자체였다.

'Singularity' 뮤직비디오 촬영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HYBE


성격은 동화

뷔는 크리스마스 같은 사람이다. 생일이 12월 30일인 그의 세계는 모든 날이 이벤트 같은 연말 밤거리의 알록달록한 불빛과 겨울날 시린 마음을 녹이는 벽난로 같은 캐럴과 산장 지붕 위에 쌓인 순수한 눈의 풍경을 닮았다. 어릴 때부터 그의 생일은 다정한 격려와 축복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파티이자 송년회였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뷔는 ‘Snow Flower’(2020), ‘Winter Bear(2019)’ 같은 겨울 노래를 많이 작곡했다.

뷔는 크리스마스카드처럼 말한다.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2018년 월드 투어 중 우연히 들른 미국 댈러스의 한 갤러리에서 노년의 무명 화가에게 작품을 구입하고 “May your day shine bright.(당신의 나날이 밝게 빛나기를.)”라는 말을 남겼다는 일화다. 뷔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아마 어딘가에서 읽었거나 들은 예쁜 문장을 기억해뒀다가 그때 했을 것이다. 뷔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말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이다. 뷔가 있어서 세상은 가끔 더 아름답다.

[THE FINAL]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HYBE

뷔는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서로 눈빛만 봐도 아는 방탄소년단 밖으로 나와 스포츠 중계를 하듯 말하는 전문 방송인 사이에 혼자 앉아 있을 때는 어쩐지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람들은 뷔가 말할 때마다 귀여워하지만, 그는 진지한 사람이다. 확고한 독창성과 감수성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곡을 쓰고, 팬들과 친구처럼 소통하며 그 누구보다 유창하게 자기 세계를 표현한다.

대표적인 표현으로 방탄소년단의 상징이 된 ‘보라해(보라색 하다)’를 꼽을 수 있다. 2016년 팬 미팅에서 공연장을 가득 채운 보라색 응원봉 물결을 보고, 보라색이 무지개의 마지막 파장 색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믿고 서로서로 오랫동안 사랑하자는 의미’라고 정의하며 ‘보라해’를 처음 말했다. ‘마지막 색’에서 ‘끝’이 아니라 ‘계속됨’을 연상한 것이다. 순수하고 직관적인 뷔의 프리즘을 거치면 세상은 좀 더 흥미롭고 낭만적인 곳으로 바뀐다. 2017년 한 콘서트에서 RM의 등이 하트 모양으로 땀에 젖은 것을 보고 “마음이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뷔의 세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눈앞에 아미라는 존재가 없다 보니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라고 공허감과 외로움을 고백한 이 팬데믹 시기에도, 그는 자작곡 ‘Blue & Grey’(2020)에서 ‘Where is my angel?(나의 천사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노래하며 잿빛 세상을 사랑의 꿈으로 가득 채운다.

2020 'MAP OF THE SOUL 7' 앨범 콘셉트 포토 촬영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HYBE

뷔는 아이처럼 순수한 면이 많지만, ‘애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타고난 대로 살아온 사람답게 큰 배포를 가졌다. 2017년 방탄소년단이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을 때, 마치 맡겨놓은 상을 찾으러 가듯 경쾌하고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앞장서 시상대로 향하던 뷔의 모습을 기억한다. ‘광적인 10대 여자 팬을 거느린 동방의 신비한 보이 밴드’ 정도로 얕잡아 보는 무례한 질문들을 견디며 레드카펫을 밟고, 언제 광고가 나오는지 알 수 없는 낯선 시상식에서도 뷔는 주눅 들거나 지치지 않고 순간을 즐겼다. 그 모습이 나에겐 트로피만큼 빛나 보였다. 동방의 신비한 나라에서 왔지만 만국 공통 기준의 미남인 뷔가, 조금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얼굴로 다 조지며’ 카메라에 가득 찼을 때의 짜릿함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뷔는 ‘행복이란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의 유수한 낯선 시상식과 무대에서 특유의 도전적이고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건,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을 느끼고 표현하는 뷔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영화

뷔의 인생은 영화 같다. 영화의 원형인 필름 영화가 어둠에 빛을 비춰 상연하는 원리를 따르기에 영화는 빛과 어둠의 예술이라 불린다. 뷔라는 예술도 빛과 어둠이 빚은 조물이다.

뷔는 방탄소년단으로 활동한 9년 동안 체격 변화가 가장 큰 멤버다. ‘얌마 네 꿈은 뭐니?’라고 물으며 시작되는 노래 ‘No More Dream’(2013)으로 데뷔해 ‘꿈을 다 이뤘다’라고 말하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월드 대슈퍼스타 방탄소년단의 여정에 드리운 빛과 어둠을 흡수하며 넓은 어깨와 단단한 턱, 단정한 눈썹과 종종 쓸쓸해 보이는 차분한 얼굴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중소 기획사의 ‘듣보’ 아이돌로 시작해 데뷔 3년 만에 가요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그의 사랑의 세계를 출렁이게 하는 수천만의 팬이 생겼고, 부모처럼 보듬고 키워주신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상을 치른 후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급하게 출국해야 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나라 몰타의 달빛 아래 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Singularity' 뮤직비디오 촬영 스케치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HYBE

빛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어둠이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견디는 방법은 제각각 다르다. RM은 미술관 관람이나 자전거 타기 같은 평범한 일을 하고, JIN은 머리를 비우려 노력하며 산다고 한다. 뷔는 견디지 않는다. 흠뻑 잠겨 있다가 흘려보낸다. 그래서 뷔의 자작곡에는 초연함과 그리움의 정서가 스며 있다.

“흔들리는 카누 위에 혼자 서는 뷔를 본 순간 내 인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Blue & Grey’의 가사는 인생을 펼쳐놓은 듯하고, 그 노래를 처음 들을 땐 울고 또 울고. 나중엔 따스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어요.”  -ARMY 트위터리안 @fineday_v

뷔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자작곡 ‘Blue & Grey’ 원곡을 들으며 카누를 타는 <인더숲 BTS편> 시즌1(2020)의 모습으로 시작할 것 같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머리에 편한 옷을 입고 강바람처럼 시원하게 웃으며 노를 젓는 모습으로. 앞으로 인생의 러닝타임에서도 뷔는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유유히 노를 저어 나아갈 것이다. 당신의 나날이 밝게 빛나기를.

글/ 최이삭(케이팝 팬 칼럼니스트)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