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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nside the Park] 영화 '1984 최동원' 조은성 감독

조회수 2022. 1.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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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아카이브

가수 싸이는 늘 자신의 콘서트에서 카메라를 든 관중들에게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라”라는 말을 남긴다. 기록을 예쁘게 남기기 위해 애쓰다가 기억할 만한 순간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조언에도 항상 전제가 뒤따른다. 수많은 관중이 나중에도 콘서트의 추억을 온전히 상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뒤에서 착실히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야구장에서도 매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팬들이 관람하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그날의 경기를 어떤 형태로든 저장하고 있다. 이번 호 ‘더그아웃 인사이드 더 파크’에서는 중계방송으로 콘텐츠 대부분이 소비되는 야구계에서 ‘1984 최동원’을 비롯한 영화라는 예술 장르로 스포츠 자료 아카이빙에 일조하고 있는 조은성 감독을 만나봤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oonjeong Jeon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초창기부터 <더그아웃 매거진>을 알아 온 것 같던데요. (12월 8일 인터뷰)

사실 매번 사서 보지는 않았고요. 온라인 포스트로 종종 보는 편이에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야구 잡지니까요. 스포츠가 발전하려면 이렇게 스포츠를 둘러싼 콘텐츠가 많아야 하는데 한국은 그게 거의 없죠. 아무리 인기 많은 종목이라고 해도 거의 90%는 중계방송으로 소비되니까요. 아쉬운 와중에 <더그아웃 매거진>이라는 잡지가 좋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1984 최동원’이 개봉된 지도 한 달이 지났어요.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영화가 아직도 일부 극장에서 장기 상영되고 있어요. 이번 주부터는 IPTV에도 서비스되기 시작했고요. 개봉할 때보다 한가하긴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가 있어서 자료 조사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거죠? 어떤 내용인가요?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 쪽으로 수요가 있어서 야구 드라마를 만들어보려고요. ‘스토브리그’ 같은 스타일로요. ‘마지막 국가대표’라는 가제로 시작했는데,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멤버들의 이야기가 실릴 예정이에요.

11월 11일이라는 개봉일도 의도한 부분이겠죠?

원래는 작년에 개봉하려고 했어요. 코로나 창궐로 1년이 미뤄진 건데, 1년을 미뤘더니 최동원 선수가 돌아가신 지 딱 10년 되는 해인 거예요. 추모하는 의미에서 등번호를 딴 11월 11일은 어떨지 배급사와 논의했죠. 상징적인 날인 만큼 배급사에서도 흔쾌히 승낙해줬어요.

#최동원 기억법

그를 추억하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된 건 언제였나요?

얼핏 다짐한 것은 10년 전쯤이었어요. 당시에 ‘레전드 리매치’라고, 경상도를 대표하는 경남고와 전라도를 대표하는 군산상고 출신의 전ㆍ현직 프로 선수들이 모여서 이벤트 경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온 최동원 감독님을 마지막으로 뵀어요. 이미 복수가 많이 차신 상태라 인터뷰는 몸이 좀 좋아지면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곧 몸이 좋아질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죠. 석 달 후인가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생전에 인터뷰를 못 한 게 한이 되기도 했고, 제 어린 시절 영웅이셨으니까…. 언젠가는 이분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작이 본격화된 건 5년 전이에요. 그때부터 자료도 조사하고 지인분들, 유족분들도 만났죠.

그럼 제작에만 5년이 걸린 거네요.

제 기준에서는 그냥 평균이었어요. 첫 다큐멘터리 영화가 기획부터 개봉까지 7년 걸렸거든요.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에 계셨던 분들을 한국에 모시고 오는 프로젝트였는데, 당시 일본에 지진도 나고 해서 여러모로 힘들었죠. 다사다난했던 그때의 기억 때문에 이번에 보낸 5년의 기간은 길다고 느껴지지 않네요.

사실 일대기를 전체적으로 다루고자 해도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그중에서도 1984년 한 해만 집중 조명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다큐멘터리 영화는 방송 다큐멘터리와는 밀도가 달라야 하거든요. 또, 좀 전에 생전에 최 감독님을 인터뷰 못 한 게 되게 한이 된다고 그랬잖아요. 만약에 살아계셨다면 ‘감독님이 야구를 하면서 가장 불꽃 같다고 느꼈던 시기가 언제냐’라고 여쭤봤을 거예요. 그럼 분명히 1984년 한국시리즈 열흘간의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이야기는 다 거두절미하고, 이분의 삶 중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빛났던 시기를 다루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언제 태어났고 어떤 선수였으며 이런 기록을 남겼다’ 하는 일대기적 구성은 방송에서 꽤 여러 번 다뤘던 소재기도 하고요.

1984년이 40년 가까이 지난 시기라 영상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었을 텐데요.

일단 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 방송국이 KBS랑 MBC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의 경기도 둘이 번갈아 가면서 중계를 했거든요. 근데 1차전부터 7차전까지 풀 영상 원본을 가진 방송국은 아무 데도 없어요. 지금은 메모리 방식으로 녹화하고 저장해두지만, 당시에는 비디오테이프 방식이었거든요. 테이프 자체가 상당히 고가라서 그걸 재활용했어요. 다른 자료로 기존 자료를 덮어쓰면서 원본이 사라져버리는 거죠. (경기는 다시 할 수도 없는 건데 너무 아깝네요.) 그렇게 아깝게 사라진 사료가 너무 많아요.

어떤 식으로 자료를 모았나요?

유족들이나 당시 팀 동료분들에게 영상이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 수소문했어요. 유족들이 녹화해서 남겨뒀던 비디오가 17개 있더라고요. 그게 근 40년 만에 빛을 발한 거예요.

옛날 자료다 보니 영화에 쓸 수 있을 만큼의 품질로 복원하는 일도 골치 아팠을 것 같아요.

다행히 제 전공이 컴퓨터공학과라서요. 요새는 업스케일링(Upscaling, 화질 개선 기술)을 위한 AI 소프트웨어들이 나와 있어요. 비디오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꾼 다음, 그 디지털 신호의 퀄리티를 높여 주는 거죠. 그걸 공부해서 적용했어요.

영상 자료를 구하는 것 외에 다른 난관은 없었나요?

제작비 구하는 것도 어려웠죠. 다큐멘터리 영화 자체가 한국에서 마이너한 장르인데 그중에서도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더 마이너하거든요. 명분은 좋을지 몰라도 거금의 제작비를 투입해서 개봉했을 때 과연 많은 관객이 봐줄지에 대한 문제가 있어요. 그 부분에서 투자자를 설득시키는 게 어려웠습니다.

이런저런 야구 용어에 대한 자막 설명은 거의 배제됐어요.

다큐멘터리 방송의 경우에는 원칙이 있어요. 장르를 불문하고 중학생 2학년 수준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우면 편성이 안 돼요. 그러니 자막과 내레이션이 친절하게 들어가죠. 그런데 영화까지 그렇게 만들면 정보의 과잉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사실 처음에는 이런저런 기록들이나 자막들이 많이 들어갔는데, 처음부터 다시 쭉 보니 산만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최동원이라는 사람 자체가 세련되기보다는 야구밖에 모르던 투박한 인물인 만큼, 스크린을 통해서 그 당시의 경기 현장만 고스란히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타깃 자체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작품이니까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출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이나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나요?

아무래도 음악이 중요했죠. 특히 엔딩 곡인 최백호의 ‘바다 끝’ 같은 경우는 몇 년 전에 처음 듣자마자 ‘언젠가는 내 영화에 반드시 한번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곡이에요. 그게 ‘1984 최동원’이 될지는 사실 몰랐지만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사를 들어보니 뭔가 최동원의 삶과 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상영이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었어요. 여운이 깊더라고요.) 마지막에 봤을 사진도 제가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발견했던 사진인데요. 연세대학교 시절 마운드에서 무릎 꿇고 계시던 사진이요. 이 사진도 맨 끝에 무조건 넣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롯데 자이언츠 팬으로 유명한 조진웅 배우가 내레이션을 맡았어요. 그를 섭외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내레이션에 어떤 톤이 어울릴까를 먼저 상상해야 글이 나오잖아요. 원고를 쓰면서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사람이 조진웅이었어요. 톤도 어울리고 롯데 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진웅이 안 해주면 내레이션을 아예 없애든가 승낙할 때까지 기다리겠단 계획이었죠. 다행히 조진웅 씨가 흔쾌히 하겠다고 했으니 잘된 거죠.

#추억은 기다림을 견디는 힘이다

강병철 감독부터 김용철, 김용희, 임호균, 김시진, 이만수 등 당시 최동원과 함께했던 인물들을 대거 섭외했어요. 섭외 당시 반응들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다큐멘터리 장르는 기다리다 보면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도 오기 마련이긴 한데요…. 그런데 이분들을 만나보니 최동원 선수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먼저 보냈다는 미안함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켜주지 못했다’라는 미안함이요. 특히 김시진 감독님은 겉으로만 보면 굉장히 냉철할 것 같은데 눈물이 많은 분이었어요.

영화의 시작과 끝에 김시진 감독과의 인터뷰가 등장하는 구성이 주는 여운이 있더라고요. 기획할 당시부터 의도했던 건지 궁금합니다.

그렇죠.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데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크게 나누면 두 가지 방식이에요. 하나는 출연진들의 인터뷰 등을 포함해 사전 조사를 많이 해서 구성을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뒤 제작하는 방법이 있고요. 하나는 구성안 없이 기승전결만 큰 덩어리로 설정해두고 찍으면서 완성해가는 방법이 있어요. ‘1984 최동원’ 같은 경우는 전자인 거죠. 왜냐하면 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록들은 이미 다 있으니까.

19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의 활약상을 영화화함으로써 꼭 담아내고 싶었던 가치가 있나요?

KBO리그가 벌써 40시즌째예요. 한 세대가 지난 거죠. 그때 그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를 연결해 줄 콘텐츠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저는 최동원의 삶, 특히 1984년의 위대했던 한국시리즈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로 여겨요. 또, 코로나19 때문에 야구 좋아하는 분들이 근래 경기장을 거의 못 갔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추억은 기다림을 견디는 힘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와요. 지금 상황은 힘들지만, 앞서 말했던 시절들을 기억해내고 즐김으로써 언젠가 다시 올 좋은 시간을 기다려보자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그의 선수 시절을 직접 보지 못한 후세대 야구팬들을 위해 ‘최동원은 이런 선수였다’라고 한마디로 표현해볼 수 있을까요?

직구 같은 삶을 사시지 않았나 싶어요. 보통은 자신이 당면한 시대를 온몸으로 맞서지 않고 약간 비껴가려는 태도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기도 하든요. 작은 것에 분노하고 큰 것에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지금의 시대이기도 하고요. 이분은 그게 안 되는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크든 작든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이야기하고 부당한 건 견디지 못하는, 나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동료나 후배들을 위했던 최초의 슈퍼스타가 아니었을까 해요.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고 그와 관련해서 보복 트레이드를 당한 건 유명한 사건이니까. 사실은 그분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외로움도 많으셨던 듯해요. 그라운드를 떠나서 혼자 지낸 적이 많았다는 증언들도 인터뷰에 있었는데 굳이 넣진 않았거든요. 때가 되면 한 번쯤 공개하고 싶긴 해요.

#야구와 영화 사이

야구를 처음 좋아하게 된 건 어떤 계기 때문이었나요?

저는 원래 선수 출신이에요. 야구를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제가 몸이 약해서 감기에 자주 걸리고 결석한 적도 많다 보니 운동을 해서 몸을 좀 튼튼하게 해보자는 게 하나였고요. 유니폼 자체가 마냥 멋있어 보였던 것도 있고요. 마침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한 거죠. (우상이 최동원 선수였다면 투수였던 건가요?) 원래 투수를 하고 싶었는데요. 안 시켜주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유격수를 봤어요. (유격수도 상당히 어려운 포지션인데.) 그때는 체구도 작고 말라서 빨랐으니까요.

어쩌다가 그만둔 건가요?

중학교 3학년 올라갈 때 진로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까지 야구를 하고 대학에 간다면 결국 최종 목적지는 프로 선수일 텐데, 나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는지, 그만한 열정이 있는지 싶었죠. 함께 뛰는 동료나 다른 학교 선수들을 보니 잘하는 친구가 너무 많은 거예요.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빨리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프로 선수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잖아요. 그땐 고등학교도 시험 보고 들어가는 판이었는데 말이에요.

컴퓨터공학과라고 했는데 영화 쪽으로 진로를 틀었네요.

원래는 시각디자인 전공이었고, 나중에 컴퓨터공학과로 바꿨어요. 꾸준히 영화와 맞닿아 있던 게 진로를 바꾼 원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고등학교 시절엔 시각디자인학과 입시를 준비하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가곤 했어요. 미술부는 야간자율학습이 없어서 시간이 났거든요. 대학에 입학해서도 바로 영화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당시만 해도 연출 쪽으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죠. 이후 군 제대 후 우연히 교육 방송에서 일하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영화 프로그램을 맡았어요. 그렇게 한동안 영화에 관련된 작업을 하다 보니 ‘이젠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거죠.

앞으로도 다큐멘터리 장르로 계속 나아갈 계획인지 궁금해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요새는 상업영화니, 드라마니, OTT니 하는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로 보이거든요.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플랫폼에 어떤 형식으로 실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예요. 제 경우에도 장르를 딱 정해서 말하는 것보다는 스포츠 콘텐츠 기획자 정도로 남는 게 요즘의 추세에 맞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를 만들 때 나만의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아직 그런 건 없어요. 그저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재미있게 본 이야기를 전달하면 관객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해요.

영화감독으로서 세운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요?

없어요. 목표나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요. 계획은 계획일 뿐, 실현되지 않는 것까지가 곧 계획이죠. (영화 ‘기생충’에서 본 대사 같은데요.) 삶은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흘러가는 거로 생각해요. ‘1984 최동원’도 제가 야구를 안 했더라면 만들지 않았겠죠.

#야구 저장하기

야구라는 종목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을 볼 때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생활 체육 야구 경기를 뛸 때도 타석에 들어서거나 그라운드에 서 있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거든요. ‘내가 앞으로 갚아야 할 카드 연체료가 얼마지?’ 이런 고민도 잠시 잊잖아요.

요즘도 꾸준히 KBO리그 경기들을 챙겨서 보고 있나요?

시즌이 끝나서 안보고요. (웃음) 시즌 중에는 별일 없으면 6시 반에 작업실에서 모니터 여러 개로 다섯 경기 동시에 틀어놔요. 그런데 요즘 야구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옛날부터 봐서 그런지 예전 선수들은 촌스럽긴 해도 경기마다 목숨을 거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반면 지금의 야구는 굉장히 세련됐지만, 재미가 없어요. 음식으로 치면 비주얼은 좋지만, 맛은 없는 케이스죠. 과거는 그릇부터 대단히 낡아 보이지만, 음식 자체는 굉장히 맛있었던 그런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잘하는 걸 넘어서 위대한 선수가 많았던 시기였죠.

조은성에게 야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지금껏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딱 떠오르는 건… 추억이자 미래 같아요. 저를 지탱했던 추억들이면서도, 그게 쌓여서 지금의 제가 야구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으니까요. 야구에 관한 기억들이 알게 모르게 개인 아카이브로 쌓여 온 거죠. 이것들로 미래의 콘텐츠를 구성할 수도 있는 거고.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야구계의 아카이브가 후세대까지 잘 보전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사를 예로 들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역사서를 당대 사람들을 위해 만들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공정성과 정확성을 위해서 당시에는 작성자 외에는 기록물을 열람할 수도 없었죠. 그 정도로 기록에 집착한 민족이었어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당장 먹고살기 바빴던 탓에 많은 분야에서 아카이브를 못 이뤄냈습니다. 특히 스포츠의 경우는 열악하죠. 앞으로는 이 분야에 뜻을 가진 분들이 자료를 잘 쌓아나간다면 다음 세대에서는 더욱 발전한 콘텐츠가 많이 탄생할 수 있을 거예요.

***

야구는 이전부터 남녀노소 다양한 세대가 즐겨 온 종목인 만큼, 최동원을 비롯한 과거의 선수들과 순간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가령 에디터에게 그는 역사 속의 전설적인 선수지만, 조은성 감독에겐 추억이자 우상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최동원이 살았던 생의 가치를 전 세대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건 그와 같은 기록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카이브와 콘텐츠들이 세대 간의 가교 구실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도 그와 에디터의 대화는 약 20분가량 더 이어졌다. 스포츠 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대한 열망이나 스포츠 자료 아카이빙 등 야구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심사들이 여럿 일치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영화감독으로서가 아닌 멘토로서의 그의 면모가 돋보이는 순간이었고, 그와 같은 멘토가 있는 만큼 다음 세대의 추억 아카이브를 쌓는 일의 전망이 점차 밝아지지 않을까 느꼈다. 아무쪼록 그의 차기작 준비에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본다.

▲ 더그아웃 매거진 129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29호(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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