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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리'의 고향, 이탈리아 '커피의 수도' 트리에스테를 가다

조회수 2022. 1. 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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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가장 큰 커피 무역항이자 이탈리아 최대 커피 브랜드의 본거지인 '트리에스테'는 카페인 위에 세워진 도시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커피 무역항이자 이탈리아 최대 커피 브랜드의 본거지인 '트리에스테'

이탈리아 도시에선 하루가 카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탈리아 북동부 해안 도시 트리에스테에서는 그 리듬이 보다 역동적이다.

이곳에서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달그락거리는 컵 소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에서 '쉬익'하고 거품이 만들어지는 소리와 더불어 트리에스테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니 카푸치노 "카포 인 비(capo in b)"의 주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슬로베니아와 아드리아 해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다른 점이다.

도시 내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잡지 '인 트리에스테'의 에디터 마리아 코체트코바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커피를 주문하려면 박사 학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에스프레소 대신 네로를 주문하고, 카푸치노는 카페 라떼라고 말합니다." 이 밖에도 다른 점은 많다. 그는 사보나 출신의 이탈리아인인 남편 프란체스코 스툼포와 함께 타지에서 온 이들을 위해 트리에스테의 독특한 카페 언어를 번역하고 있다.

코체트코바의 말처럼, 트리에스테의 일부가 되려면, 이 도시의 커피 전통에 익숙해지는 게 좋다.

트리에스테는 지리적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과 분리되어 있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에게 카페는 또 하나의 거실이다. 집을 제외하면, 연령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농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이미 커피가 일상에 깊이 자리한 이탈리아에서 이 변방의 도시는 이탈리아의 비공식적인 '커피의 수도'다.

트리에스테 사람들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이탈리아 다른 지역의 두 배다. 또한 지중해의 주요 커피 무역 항구이자 이탈리아 최대 커피 브랜드 중 하나인 '일리(illy)'가 이곳을 본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트리에스테로 온 영어 교사 알레산드라 레사는 "커피는 이곳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다른 이탈리아 도시처럼 바에 서서 간단히 커피를 마시는 대신, 우리는 앉아서 천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약속을 잡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포장해서 들고 가는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레사는 자신을 비롯한 트리에스테 사람들이 도시 주변의 석회암 동굴로 놀러갈 때도 특별히 디자인된 히터와 냄비, 컵을 들고 가서 '뷰온 카페(좋은 커피)'를 마시며 쉰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특별한 기쁨입니다."

트리에스테 주민들은 다른 이탈리아인들보다 커피를 두 배 더 마신다고 한다

커피는 의사였던 프로스페로 알피니가 베네치아 약국에서 팔겠다는 목적으로 1570년 이집트에서 커피 원두를 들여오면서 이탈리아에 전해졌다고 한다.

커피는 이내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강장 효과 및 이슬람과의 연관성 때문에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톨릭 교도들은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부르며 교황 클레멘스 8세에게 금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교황은 커피는 너무 맛있으니 "신앙이 없는 이들"만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베네치아와 비엔나에는 우아한 카페들이 생겨났고 커피는 귀족과 지식인들이 즐기는 고급 음료의 반열에 올랐다.

트리에스테가 커피 열풍에 동참하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국제 체제하에서 면세 항구로 지정된 1719년. 오스만 제국에서 커피를 수입한 트리에스테는 빈의 유명한 커피숍을 포함한 오스트리아-헝가리 국제 체제 전역에 있는 카페에 원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가의 수장 마리아 테레사는 트리에스테를 강력한 항구 도시가 되도록 큰 힘을 실어준 인물이다. 그녀는 트리에스테에 실제로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통치하던 시절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엄청난 빚을 졌고, 그는 이 도시를 통해 돈을 벌 계획을 마련했다.

그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1751년 트리에스테를 모든 종교에 개방했다. 가톨릭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른 지역에선 개신교도들을 추방했고 유대인들에게 가톨릭 복장 규정을 요구하고 가톨릭 신자들만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을 고려할 때, 이는 과감한 조치였다. 노동자들과 기업가들은 곧 지중해 전역에서 트리에스테로 모여들어 회사를 설립하고 운송과 커피 사업을 발전시켰다.

트리에스테는 오늘날에도 다양성에 관대하다.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교 회당이 남아 있다. 19세기 세르비아 정교회가 황금 모자이크와 첨탑으로 장식해 역사의 중심부에 세워놓은 눈부신 장관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이 도시를 거리를 거닐다 보면, 이탈리아어보다 크로아티아어와 그리스에 영향을 받은 오스트리아계 독일어처럼 들리는 지역 방언을 듣게 될 것이다.

커피 사업도 계속 번창하고 있다. 1933년에 설립된 '일리' 외에도, 수십 개의 다른 작은 회사들이 매년 전 세계에서 트리에스테의 부두로 들어오는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고 블랜딩한다.

레사는 "남쪽 방향으로 운전할 때는 창문을 여는 것은 좋다"고 말했다. "창고에서 자욱한 커피향이 흘러 나오기 때문이죠."

매년 10월(2022년에는 다시 열 수 있기를 희망한다)이면 트리에스테 커피 축제가 열린다. 로스터리(커피 원두를 볶고 가공하는 곳)들은 시음 행사를 열고, 레스토랑에선 커피로 양념된 요리를 만든다. 그리고 이 도시 최고의 바리스타를 선정하기 위한 "카포 인 비" 챔피언십도 개최된다.

비엔나의 우아한 커피하우스를 본떠서 1800년대에 지어진 카페들 중 일부가 여전히 트리에스테의 역사 중심지에 남아있는 것도 다행스럽다. 특히 이곳은 샹들리에와 야자수 화분 사이를 오가는 트리에스테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좋다.

이곳은 정치적 반란군들이 회의를 열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점령 때 미국 군인들이 연회를 벌이던 곳. 제임스도 1904년 트리에스테로 이주한 뒤 이곳에서 유흥을 즐겼다.

1839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트리에스테의 '카페 델리 스펙치'의 외부 테이블은 유니타 디탈리아 광장최고의 명소다. 현지인들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큰 해안광장이라고 말한다. 이곳에 가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은 아드리아해로 열려 있고 다른 쪽은 4층짜리 옅은 회색과 상아색 석조 건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중앙에 금으로 도금된 시계가 주변의 아치 및 발코니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스펙치의 붉은 가죽 연회장을 오가는 관광객들을 보다보면, 이 광장 주변 네 곳의 카페에서 여성들이 파라솔을 펴고 탑 모자를 쓴 신사들이 지나던 과거 1차 대전 시대의 아름다운 시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광장 너머에는 크리스프 자킷과 빨간 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을 볼 수 있는 아늑한 진주색의 방인 1830년 건물 '까페 토마세오'와 1836년에 세워져 린저와 사허토르테 케이크와 같은 오스트리아산 식료품을 파는 제과점 '라 봄보니에라'가 있다.

이 두 곳은 페라토너 초콜릿 회사가 관리하는데, 트리에스테를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이곳의 커피 언어를 번역한 카드를 나눠주고 있다.

그러나 트리에스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역사 중심지의 바로 바깥에 위치한 1914년 설립 카페 '산 마르코'다. 이곳 내부의 풍경은 따뜻하고, 천장에 청동 커피 잎과 고풍스러운 구리 에스프레소 머신을 배치한 독창적인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서점도 있고, 대리석 테이블마다 체스를 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지역 주민들은 이 카페의 주인 알렉산드로스 델리타나시스를 도시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과거 출판업자였던 그는 2013년 이 카페를 인수해 폐업 위기에서 카페를 살려냈다.

델리타나시스는 카페 내부의 방을 사람들이 모여 소규모 콘서트와 도서 발표회를 여는 장소로 만들었다. 취재 마지막 날 밤, 이 곳에서 영국, 핀란드, 이집트, 호주, 심지어 나폴리 등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대화의 주제는 계속해서 커피로 흘러갔다. 그들은 모두 트레에스테로 온 후, 훨씬 더 많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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