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부자 나라의 민낯

조회수 2022. 1.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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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평화롭게 보내고 싶어 내려간 시골집의 밤, 외투를 단단히 여며 입고 나가 언덕 위에 털썩 눕는다. 불을 끄면 별이 보인다지. 인적이 드문 작은 마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이 떠 있다. 모든 별이 하나같이 밝다. 눈으로 별들의 움직임을 쫓다 빛나는 긴 꼬리를 매단 채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다. 도시에서 올려다본 하늘에서 찾은 가장 밝은 별은 늘 행성이거나 위성이거나 혹은 비행기였는데 말이다.

공항 건설의 진실들

정부가 편성한 2022년 공항 분야 예산이 머릿속을 꽉 메운다. 4,234억 원. 지난해 9월 정부는 국내 15개 공항에 10개 공항(가덕도 신공항, 새만금 신공항, 제주 제2공항, 서산공항, 대구공항(이전), 흑산공항, 백령공항, 울릉공항, 경기남부 민간 공항, 포천 민간 공항)을 신설 및 증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공항이 죄다 적자로 살림도 어렵다던데, 정부안대로 확정될 경우 대한민국은 조그만 땅덩이에 공항 25개를 보유한 ‘공항 부자’ 국가로 거듭난다. 기후위기 시대에 나날이 악명만 높아진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에는 오름이 포함되고, 새만금 신공항 부지 군산 수라갯벌에는 법적보호종 40여 종이 살아간다. 생명의 터전에 공항을 짓겠다는 이기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자꾸 되살아난다. 녹색 정치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친다.

공항예정지 지도 ⓒ신공항반대전국공동행동

세계 각국에서는 공항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거나 수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계 1위 공항인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터미널 증축 계획은 보류되었고, 영국 히드로국제공항의 활주로 추가 건설 계획은 온실가스 감축 책무 위반으로 위법 판결이 났다. 프랑스 하원은 열차로 두 시간 30분 내에 이동 가능한 거리에는 국내선 항공기 운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지난해 9월,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를 신설 및 확장하는 계획이 공식화되었다.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끄럽고 답답한 형국이다.

플뤼그스캄(Flygskam: ‘비행기 여행의 부끄러움’이라는 뜻의 스웨덴 신조어. 온실가스 최다 배출 교통수단인 비행기 탑승을 보이콧하는 기후위기 대응 실천 운동으로 그레타 툰베리가 확산시켰다.) 운동으로 보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까지 간 그레타 툰베리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환경문제로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한 콜드플레이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 외국 작가도 플뤼그스캄 운동에 일조했다. 작가의 책이 번역,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 출간기념회가 열렸는데, 작가가 환경보호에 대한 신념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출판사는 작가의 선택을 존중했을 테고, 나 같은 애독자는 아쉬움을 경외심으로 달래며 그가 언제까지 비행기를 안 탈지 궁금해했다. 벌써 다섯 해도 더 지난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누군가에게는 위안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존경심을 일으키며 누군가에게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저어새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상실감과 다짐

이러한 움직임에 자극받아 나도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20○○년 새해 버킷 리스트’에는 ‘~하지 않겠다’로 끝나는 문장이 꽤 많은데, 굶는 한이 있어도 고기를 삼키지 않겠다, 결코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 같은 다짐과 함께 비행기를 내 삶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탄소 저감이나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더라도 뭐라도 하겠다는 심정이었다.

가치관이 견고해질수록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실천 사항을 적은 목록은 길어졌다.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타야 하는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도착한 공항에서 드는 죄책감은 내 몫. 내 안에서 부딪는 고민을 털어놓으니 한 친구가 말했다. “그레타 툰베리가, 콜드플레이가, 네가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할 수 없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짐을 완벽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수라갯벌 전투기 충돌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개인적인 실천보다 시스템 전환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명을 위해서,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죄책감을 키울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어 같이 변화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데 자꾸 변화에 역행하는 계획이 쏟아져 나오니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생명과 함께 살아가자고, 똑바로 하라고 거리에서 소리쳤고, 마침내 지난해 말 제주 제2공항 건설 부동의를 얻어냈다. 그렇지만 사회가 바라는 대로 바뀌기에는 너무 아득하다. 적어도 내 삶이라도 원하는 세상이었으면, 그러한 형태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내가 비켜선 자리에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지는 세상. 다짐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수치로 환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다짐하기까지 품은 간절한 마음과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시민들은 마땅히 그걸로 충분하다. 마음 한 편에 떠다니던 부채감은 군산 하늘을 나는 저어새처럼 서서히 비행한다.

글/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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