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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은 경제가 아니라 가치다

조회수 2021. 3. 5.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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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전 지구적 성공은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6년 차 ‘아미’(A.R.M.Y.,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내가 만일 논문을 쓴다면 이것을 연구 주제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 없다. 대학 학자금 대출을 지난해에야 다 갚았기 때문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빅이슈》 지면에서 열심히 실현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지금은 전세 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진짜 의미

다 아는 얘기를 잠깐 하겠다. 방탄소년단이 2020년 9월에 처음 1위를 차지한 빌보드 싱글 차트는 음반 및 음원 판매량, 유튜브 등 주요 온라인 채널 스트리밍 횟수, 라디오 방송 횟수까지 총 세 항목을 까다롭게 종합해서 집계한다. 방탄소년단은 판매량과 스트리밍 순위에서는 계속 높은 기록을 세워왔지만, 라디오의 벽에 막혀 오랫동안 싱글 차트 1위에 오르지 못했다. 

판매량이 노래의 인기와 늘 연동되는 것은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라디오가 이들의 대중적 인기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로 존재해왔다. 

출처_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미국의 진보적인 소셜 미디어 뉴스사 ‘Now This’의 ‘왜 라디오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틀어주지 않는 걸까?’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인 방탄소년단의 <맵 오브 더 소울: 7> 타이틀곡 ‘ON’이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라디오 방송국인 LA의 KIIS-FM과 뉴욕의 Z100에서 발매 당일에 한 번, 한 달여 후에 또 한 번 플레이되고 말았다고 한다. ‘ON’의 빌보드 싱글 차트 최고 순위는 4위였다. 

출처_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라디오는 기득권의 매체다. 누구의 음악을 틀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 결정권자는 높은 확률로 시민권자·백인·중년·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정반대 편에 있는 외국인·아시안·비백인·20대에 ‘전통적 남성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한국어로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은 선곡 선택지에 들지 못했다. 

그들은 방탄소년단을 코로나19의 종식보다 더 먼 존재로 느낄 것이다. 현재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인기가 너무 많았다. 전통적인 K-POP 팬덤과 ‘대중’의 분리벽뿐만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의 장벽도 깨버릴 정도로 너무나 명징하게 인기가 많았다. 

미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소수자성의 소수자성을 거듭제곱한 정체성을 가진 방탄소년단이 기득권의 표상이라 할 라디오 방송국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상황은 그 소수자성의 스펙트럼과 교차하거나 공감하는 팬들에게 방탄소년단 이상의 의미로 작동했다.

빌보드 1위를 기뻐하는 방탄소년단 리더 RM (출처_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방탄소년단을 사랑하는 마음은 ‘응원과 숭배’보다는 ‘지지와 연대’의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미국의 아미들은 폐업한 쇼핑몰 고객센터처럼 응답하지 않는 라디오 방송국에 지치지 않고 노래를 신청했다. 화보가 포함돼 평균보다 비싸도 실물 앨범을 꼬박꼬박 구매했다. 산정 기준을 명확하게 파악해 전략적으로 차트에 접근했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서사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과정을 ‘방탄소년단을 사랑하기 때문에’로 다 설명할 순 없다. 아미의 세대 구성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MZ세대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확고한 기준과 신념, 강한 사회적 책임감, 가치소비 경향이 더해지며 동력이 배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대에게 ‘선한 일’과 ‘옳은 일’은 기부와 봉사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출처_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욕설과 비하 대신 진솔한 좌절과 사랑을 담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고 공유하는 것, 투표와 스트리밍으로 기득권이 지우려고 하는 방탄소년단을 가시화하는 것도 포함하는 일상적이고 폭넓은 개념이다.  

사랑하는 것을 힘껏 사랑하는 것의 위력

어디 출신이든, 무슨 언어를 말하든, 나이가 어떻든, 이 로즈볼 스타디움에 함께 있는 우리는 모두 하나예요.
(-방탄소년단 리더 RM, 2019년 월드 투어 LA 로즈볼 스타디움 공연에서)

방탄소년단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소수자성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책임을 고민했다. 할시, 라우브, 트로이 시반 등 다양성의 가치를 말하는 진보적인 아티스트들과 협업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무고한 생명을 잃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면서 일어난 ‘블랙 리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여기엔 아미도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서울과 뉴욕 등 세계 5개 도시에서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담은 공공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 ‘커넥트 BTS’를 진행했다. 

출처_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차별에는 사랑으로 맞섰다. 라디오 방송국을 포함한 미국 주류 음악 산업의 냉대와 모든 불합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 시대의 작은 위로가 되고 싶다며 경쾌한 댄스곡 ‘Dynamite’를 발표했다. 

그리고 아미는 그 노래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202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음원으로 만드는 것으로 함께하며, 사랑하는 것을 힘껏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줬다.

빌보드 1위 가수 팬의 흔한 아침 식사 (사진: 최이삭)

우리나라 언론에서 방탄소년단은 종종 인간 삼성전자나 태극기 같은 존재로 다뤄진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원화된 산업의 역군으로,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문화 영토’를 확장한 K-POP 전사로, 냉각된 한미 관계를 환기할 민간 특사 같은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신화화하고, 이들의 성취를 경제적 효과나 국력의 규모로 환산하려고 한다. 

출처_빌보드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방탄소년단의 가치를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전 세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Dynamite’ 커버 영상을 보며, 찌는 듯한 더위에 차도르를 두르고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와서 “꿈, 희망, 전진, 전진”을 외치는 사우디아라비아 소녀들을 보며, 아침에 샤워할 때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고 말하는 덕메(덕질 메이트)를 보며 가슴 깊이 차오르는 희망과 감동을 대체 무엇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글/ 최이삭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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