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백 열풍 일으킨 이 사람, 이제는 '플라스틱 가방'을 판다?

조회수 2020. 6. 20.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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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안야 힌드머치 (인터비즈 수정)

13년 전, 한 매장 앞에 사람들이 빼곡히 줄을 늘어섰다. 오전 11시까지 4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매장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들 손엔 천으로 된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가방엔 멀리서도 잘 보일만큼 크게 ‘I'm Not A Plastic Bag(나는 비닐봉지가 아니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에코백의 원조격인 안야 힌드머치가 선보인 가방이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플라스틱 가방'을 만들고 있다.


에코백의 원조? 영국서 30분 만에 2만 장 팔려

출처: CEO 안야 힌드머치

'안야 힌드머치(Anya Hindmarch)'는 1987년 런던에서 사업을 시작한 명품 액세서리 브랜드로 '에코백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이 타이틀을 얻게 된 건, 2007년 안야 힌드머치의 한 프로젝트 때문이다.

당시 안야 힌드머치는 한 환경 자선 단체와 함께 비닐봉지를 줄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람들이 한번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 대신 반복해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재생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 오래 쓸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든 것은 물론, 사람들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단번에 느낄 수 있게 '나는 비닐봉지가 아니다'라는 문구도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다.

처음 영국 세인스버리 슈퍼마켓에서 2만 장 한정으로 판매되었는데, 3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환경친화적으로 제작됐다는 점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방이 저렴한 가격(약 7000원)에 판매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셀럽들이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포착되면서 더욱 인기를 얻었다. 영국에서 인기를 얻고 관련 보도가 퍼지면서 미국, 일본 등에서도 판매됐다. 미국의 경우, 출시 당일 한정수량으로 준비한 800개가 순식간에 매진됐다.

출처: I'm Not A Plastic Bag을 들고 다니는 샐럽들

'I'm Not A Plastic Bag'은 비닐봉지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가방 발매 전후 비닐봉지 사용을 자제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난 결과 비닐봉지 사용이 확연히 줄었다. 영국 소매컨소시엄에 따르면 2006년 영국 내 비닐봉지 사용량은 106억 개였지만 2010년 그 수치는 61억 개로 떨어졌다고 한다. 세인즈버리 슈퍼마켓 역시 2007년 프로젝트 이후 2년 동안 3억 1200만 개의 비닐봉지를 덜 나눠주어 비닐봉지 사용이 58% 줄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1만 3200톤의 순수 플라스틱이 절약된 것과 동일한 양이었다.


에코백이 진짜 '에코(eco)'한 건 맞는 걸까

화학처리 등의 가공을 거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가벼워 실용성이 높은 캔버스 가방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종류의 가방에 환경, 생태를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의 앞 글자를 따와 '에코백(eco bag)'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부터는 다양한 디자인의 에코백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에코백이 소비될수록 '본래' 에코백의 취지는 퇴색되었다. 일회용 비닐봉지를 줄이는 재사용 가방이 아닌, 그저 패션이나 유행으로 한두 번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어버렸다. 친환경에 대한 고민은 사라진 채 무늬만 '에코백'으로 남은 것이다.

영국 환경청(2011)에 따르면 면으로 된 에코백은 131번 이상 사용해야 환경보호에 효과가 있다. 물론 가죽을 사용하지 않아 동물 보호에는 일조할 수 있지만, 석유로 제작하는 비닐보다 목화로 에코백을 만드는 게 환경 비용이 더 높다. 목화 재배에 드는 에너지와 비료, 살충제까지 포함한다면 에코백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덴마크 환경식품부(2018)에서도 종이봉투, 비닐봉지, 에코백 등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그 결과 면으로 된 가방은 최소 7100회, 유기농 면화를 이용한 천가방은 2만회을 사용한 뒤 버려져야 제조과정에서 발생시킨 오염을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닐봉지는 37회, 종이봉투는 43회인데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즉, 본래 취지대로라면 비닐봉지를 대체할 만한 환경적 효과를 위해서는 에코백 하나를 최소 몇 백 번에서 몇 천 번은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환경에 도움이 안된다면.. 비틀어 생각해볼까?

올해 2월, 안야 힌드머치는 <I Am A Plastic Bag>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2007년 <I'm Not A Plastic Bag>프로젝트가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에코백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는 '플라스틱 가방'을 제작해 판매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안야 힌드머치 대표는 "2020년 임무는 (환경)문제의 인식에서 재료 순환성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프로젝트는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재료 자체를 건드린 것이다. 그들은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대신 플라스틱을 재사용해 자원이 순환할 수 있는 방안을 내세웠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판매 가능한 가방을 만드는 일이 쉽진 않았다. 플라스틱 병을 씻고, 분류하고, 잘게 찢어 알갱이로 만들면 그 알갱이들을 녹여 섬유로 만들었다. 이 섬유들을 엮어 직물을 만들고 자동차 앞유리에서 재활용되는 PVB코팅과정을 거쳤다. 무늬와 로고 등의 디자인이 완성된 직물은 재단을 거쳐 가방으로 탄생했다. 안야 힌드머치는 무려 2년 동안 이 과정을 연구, 개발했다.

출처: 안야 힌드머치

각각의 가방에는 32개의 500ml 재활용 플라스틱병이 원단으로 사용됐다.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방 겉면에는 'I Am A Plastic Bag' 글자들이 새겨졌다. 5파운드에 판매되었던<I'm Not A Plastic Bag>가방과 달리 두 번째 프로젝트 가방의 가격은 595~695파운드(80~95만원)으로 정했다. 소비자들에게 플라스틱 사용의 환경적 영향과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출처: 안야 힌드머치 페이스북(인터비즈 수정)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대대적인 론칭 행사 대신 3일간 런던의 모든 안야 힌드머치의 상점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9만 개의 플라스틱병을 모아 안야 힌드머치 매장의 쇼케이스를 채웠다. 6초당 1개씩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출처: 안야 힌드머치

안야 힌드마치는 '혁신은 완벽함이 아닌 진보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브랜드가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선 느리더라도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13년 전, 안야 힌드머치가 선보인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 에코백 열풍을 불러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완벽한 프로젝트라 생각하지 않았고 2년간의 연구 끝에 두 번째 프로젝트 제품을 완성했다. 환경을 위한 새로운 진보를 보여준 것이다.

인터비즈 박은애 조정현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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