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어주는 아이돌, 나의 방탄소년단 입덕기

조회수 2021. 4. 18.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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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6년 5월에 아미가 되었다. 번아웃으로 일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방탄소년단을 알게 되고 돌이킬 수 없게 됐다. 2009년 동방신기를 탈덕하고 7년 만의 제대로 된 덕질이었다. 

30대가 되어 다시 시작한 덕질은 첫 연말정산 신고처럼 외롭고 아득했다. 이제 더는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을 방청하러 갈 친구도, 가입이 까다로운 팬 사이트 등업 시험을 함께 쳐주는 친구도 없었다. 

2017년 12월, 방탄소년단 WINGS 투어 콘서트(사진제공: 최이삭)

다행히 나는 모르면 알아서 찾아보는 미덕을 가진 30대였다. 혼자서도 그럭저럭해나갔다. 그래도 종종 외로움이 찾아와 동방신기 구 덕메(덕질 메이트)들에게 아미를 영업했지만, 그들은 이제 직장이나 육아나 재테크를 덕질하고 있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방탄소년단 특집을 보고 입덕했을지도 모르니 오랜 만에 다시 영업을 해봐야겠다. 

2017년 12월, 방탄소년단 WINGS 투어 콘서트(사진: 최이삭)

혼자 하는 덕질이 가장 외롭다고 느낀 때는, 2017년 겨울 고척돔에서 열린 ‘윙즈 투어 더 파이널’ 콘서트에서였다. 영하의 날씨에 비까지 온 몹시 추운 날이었다. 10년 전 잠실주경기장장에서 겪은 뼈까지 시린 추위를 기억하는 나는, 썰매장에 온 세 살 어린이처럼 옷을 껴입고 우비까지 챙겨 콘서트장으로 갔다. 


2017년 12월, 방탄소년단 WINGS 투어 콘서트(사진: 최이삭)

‘나 때는’ 대형 경기장이 잠실주경기장밖에 없었는데 새 시대의 덕질은 고척돔에서 시작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척돔에는 ‘돔’이 있었다. 

수만 명의 관객이 난로처럼 열기를 뿜어내는 실내 공연장에서 ‘기모’가 든 옷을 네 개쯤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중앙에서 블루투스로 제어되는 ‘아미밤’(방탄소년단 응원봉)의 오색찬란한 빛을 내려다봤다. 미래 시대에 온 것 같았다.

함께 웃고 싶은 아이돌

방탄소년단은 뭔가 달랐다. 입덕 전까지 나에게 아이돌은 롯데타워처럼 올려다봐야 하는 존재였지만, 방탄소년단은 석촌호수 벚꽃길을 함께 걷고 싶은 아이돌이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김밥을 먹으며 함께 웃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팬들의 노고를 제대로 알고 표현하는 아이돌이었다. 

음악 방송의 수상 소감에서 소속사 조직도를 내림차순으로 외우는 대신, 팬클럽 아미의 이름을 가장 큰 소리로 부르며 기쁨의 순간을 함께 만끽하게 했다. 이전까지 내 아이돌의 성취는 장원 급제한 조카를 보는 기분을 들게 했지만, 방탄소년단은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 같은 일체감을 줬다. 

방탄소년단 <화양연화pt.1> 앨범 화보

‘I need U’(<화양연화 pt.1> 타이틀곡, 2015년 발매)로 데뷔 이래 첫 음악 방송 1위를 하고 기뻐하는 해맑은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너희를 계속 이렇게 웃게 해주고 싶다고. 그러면 나도 웃게 될 테니까. 

‘작은 것들을 위한 시’(<MAP OF THE SOUL : PERSONA> 타이틀곡, 2019년 발매)의 “네가 준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이 아닌 너에게로”라는 가사는 팬들이 보내는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사랑에 대해, 아이돌과 팬의 관계에 대해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끈질기게 성찰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수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뮤직비디오 중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에서 팬은 인간 응원봉이나 걸어 다니는 잠실주경기장이 아닌 날개를 달아주는 손이고, 소우주 같은 하늘에서 함께 반짝이는 별이며, 때로 가면을 쓰고 마주해야 하는 입체적인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러기에 방탄소년단은 “추락은 두렵지만, 착륙은 두렵지 않다.”고 얘기한다. 인기는 파도가 아니라 항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함께 울어주는 아이돌

첫 시작은 방탄소년단의 음악이었다. 2015년 어느 날 거리에서 들은 ‘I need U’라는 노래가 너무 좋았다. 그 노래를 들으면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요즘 미디어에 비치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은 희망과 사랑의 아이콘이지만, 이들은 내내 함께 울어주는 것 같은 음악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슬픔을 터트리는 차가운 눈물이 아니라, 가라앉히는 뜨거운 눈물. 

당시 나는 음원 사이트에도 가입하지 않아 사운드 클라우드로 ‘I need U’를 들었다. 내 아이폰에는 <에반게리온> O.S.T. MP3 파일밖에 없었다. 인생의 테마곡은 ‘잔혹한 천사의 테제’였다. 듣고 있으면 세상을 괴멸시키고 멀고 먼 곳으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5년 5월 5일, 첫 공중파 1위를 한 방탄소년단 트위터(출처 방탄소년단 트위터)

지금은 뭔가를 박살내고 싶을 때엔 ‘Never mind’(<화양연화 pt.2> 수록곡, 2015년 발매)를 듣는다. “부딪칠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다 보면 사춘기 같은 혈기가 샘솟는다. 

점심 급식 먹고 바로 소시지빵을 사 먹으러 가는 혈기.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이 미래의 무한함이던 시절의 혈기.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대출금 이자다. 

방탄소년단 덕질은 여정이다

이제는 화석이 된 말이지만, 나는 전형적인 ‘88만 원 세대’였다. 비정규직이 보편화되고 저질 일자리에 20대가 먼저 배치되던 때에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이라는 세련된 말로 노동을 후려치기 당한 첫 세대였다. ‘노오력’을 아무리 해도 제자리였다. 코로나19로 ‘노오력’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지금 청년 세대에게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앨범 콘셉트 포토(출처 방탄소년단 페이스북)

어쨌든, 그래서 나에겐 ‘I need U’가 필요했다. 방탄소년단의 얼굴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지만, 그 노래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I need U’만 3만 번 정도 들은 어느 날, 불현듯 ‘방탄소년단’을 검색했다. 

이름과 얼굴을 받아쓰기하듯 외우고, 덕질의 망망대해로 헤엄쳐 나갔다. 데뷔 이래 소처럼 일한 방탄소년단의 3년치 영상과 사진을 주행하는 데에 두어 달이 걸렸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방탄소년단(출처 '유퀴즈' 인스타그램)

만약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고 최근에 입덕하셨다면 물리적으로 단기간에 정주행이 어려우니 “방탄소년단 입덕 뭐부터”를 검색해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편집 영상을 찾아보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방탄소년단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자체 제작 예능 콘텐츠인 ‘본보야지’와 ‘달려라 방탄’, 월드 투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영화 <브레이크 더 사일런스>, 뮤직비디오, 음악 시상식 레전드 무대, 댄스 프랙티스 영상을 과거순으로 보시길 추천한다. 방탄소년단 덕질의 묘미는 여정을 함께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5일, 첫 공중파 1위를 한 방탄소년단(출처 방탄소년단 트위터)

방탄소년단 음악의 특징에 대해, 흔히 위로와 치유를 이야기한다. 아이돌의 음악이 무슨 위로와 치유씩이나 주냐고 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다. 20대인 너희가 인생을 얼마나 아느냐고, 너희가 무슨 절망을 알겠느냐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백년도 못 사는 우리가 인생을 알아봐야 뭘 얼마나 알까. 인생은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땀 흘리며 춤추고 노래하고, 진심을 다해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가는 방탄소년단의 노래에는 감동이 있다. 

그리고 감동은 삶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방탄소년단이 나와 함께 울어주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글/ 최이삭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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