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생 상무와 93년생 사원이 설전..아찔했죠"

조회수 2021. 6. 8. 14: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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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튜브에서 방영된 웹드라마 ‘낀대’는 광고대행사 부장과 신입사원 사이에서 치이는 35세 과장의 이야기로 누리꾼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누적 조회수가 250만 회에 달할 정도다. 낀대는‘끼인 세대’의 줄임말. 일명 ‘꼰대’ 임원과 ‘요즘 것들’ 사원 사이에 끼어 있는 중간관리자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상무와 사원이 10여 분 간 설전…아찔했죠”

현실도 다르지 않다. 중견 의류기업 A영업팀장(1980년생)은 6개월 전 아찔한 경험을 했다. 회사 임원과 영업사원이 만나 소통하는 간담회에서 1965년생 상무와 1993년생 사원이 10여 분간 날선 설전을 벌였기 때문. A팀장은 “입사 14년 동안 그런 일은 처음 겪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사건의 발단은 업무 고충을 토로한 영업사원의 발언이었다. 영업사원은 “업무추진비가 부족해 내가 기획한 상품에 대한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상무는 “현재 회사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해당 상품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기 어렵다. 다음 분기에 검토해보겠다”는 취지로 사원에게 설명했다.

상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원이 “그럼 나는 이번 분기에 성과를 어떻게 올리느냐. 인사 평가에서 낮은 고과를 받게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상무는 “다들 힘들게 일하고 있다. 조금 기다려 보라”며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책망하는 듯 한 말투로 상무가 반응한 점에 기분이 불쾌해진 사원은 “왜 내가 큰 잘못한 것처럼 말하시느냐.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고 해놓고는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성과를 올려야 하는데, 이러면 회사를 다니기가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상무가 얼굴을 붉힌 채 “‘회사를 다니기 어렵다’는 직원의 뜻을 존중해주겠다”고 받아쳤고, 이에 질세라 사원은 “알겠다”고 응수했다. 며칠 뒤 영업사원은 결국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이 사건으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자 회사는 간담회를 폐지했다. 표면적인 폐지 사유는 ‘임원들이 참여할 시간이 부족해서’였지만, 실제로는 ‘솔직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젊은 세대의 언행을 임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A팀장의 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만약 저라면 상무에게 지적을 당하더라도 일단은 그 자리에서 수긍을 하고, 불만사항에 대해서는 추후 팀장을 통해 전했을 거예요. 요즘 젊은 사원들이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우리 세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불만사항이나 감정을 회사 임원에게 대놓고 표출하거나 문제제기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요.

또 어떤 세대보다 보상을 중요하게 여겨 인사고과와 연봉협상에 반영되는 성과가 자신의 기대치보다 낮게 평가되면 이에 불만을 품고 퇴사를 결심합니다. 임원진은 팀장인 저에게 젊은 직원 교육을 똑바로 하라고 하는데, 정작 회사에는 세대 간 소통 문제를 해소할 대응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아요. 젊은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난처합니다.”

국내 유수 기업의 팀장은 경력이 최소 10년을 넘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이 다수다. 이들은 입사 후 상명하복을 당연시하는 세대에게 사회생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팀장으로 승진해서는 수평관계를 중시하는 MZ세대를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팀장들은 MZ세대처럼 능력주의와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권위주의에 반발심을 드러내면서도, 윗세대처럼 조직 문화에 순응하고 윗사람 지시에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제조사는 전통적으로 전수되는 기술과 표준 운영 절차에 의해 가동됩니다. 근면성을 강조하며, 어려운 일에 쉽게 무너지는 사원을 ‘열정 없는 패배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요. MZ세대는 일에 야심을 갖고 있지만 목표로 삼은 ‘기술인’이 되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리며 기술을 연마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선배들의 도제식 교육을 묵묵히 따라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숙련공이 되기도 전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바라니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부품제조사 기술업무팀장 B)

“MZ세대 사원들은 대체로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경향이 있지만, 기성세대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회사에 충성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충성하면 헌신짝이 된다고 여기죠. 심지어 회사가 구축한 네트워크나 모임에서조차 자신의 열정을 쏟으려 하지 않아요. MZ세대는 1997년 IMF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1970년대생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1980년대생의 아픔을 보며 자랐죠. 그래서 회사나 상사에 대한 소속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당장은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더라도 그 안정감이 지속될 거라고 믿지 않는 듯합니다.” (해운회사 재무팀장C)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MZ세대를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나 위협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성세대가 MZ세대에게 씌우는 일종의 ‘프레임’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같음을 추구하되 다름을 존중하는 자세(求同存異)를 바탕으로 세대 간 창의와 질서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이 확보되고 부가가치가 만들어지며 더 나은 조직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조언했다.

과정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MZ세대의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MZ세대는 지금보다 더 많은 보상을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에 따른 과정과 절차를 공개해 자신들을 납득시켜달라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들에게 투명한 경영은 공정과 같다”고 말했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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