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사이즈가 275mm? 케이트 윈슬렛의 '시시콜콜' TMI 7

조회수 2021. 3. 28. 23:0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BRS
<암모나이트>

케이트 윈슬렛은 매 작품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암모나이트>에서도 영국 남부 해변 마을에서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 메리 역할을 맡아, 상류층 부인 샬럿(시얼샤 로넌)과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보여주며 또 한 번 연기력 갱신에 성공했다. 영화 <천상의 피조물>로 데뷔 후 <타이타닉>으로 정점을 찍고 할리우드 대표 배우가 되기까지, 그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7가지를 모아보았다.



아일랜드계와 스웨덴의 혈통의 영국 태생

케이트 윈슬렛 SNS

케이트 윈슬렛은 1975년 10월 5일, 영국 버크셔주의 레딩에서 태어났다. 풀네임은 케이트 엘리자베스 윈슬렛으로, 아일랜드계와 스웨덴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그녀는 과거 셀럽들이 가족의 뿌리와 조상을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후 두 유 띵크 유 아?>(Who do you think you are?)에 출연한 바 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조상이 1830년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다 스웨덴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왔고, 자식들을 위해 감자를 훔치려다 체포되어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1세에 연기 시작 그리고 화려한 데뷔

<천상의 피조물>

그녀의 아버지 로저 윈슬렛과 어머니 샐리 윈슬렛은 연극배우였다. 외할아버지는 레딩에서 극단을 운영했고, 삼촌은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에서 연기를 했으며, 언니와 여동생도 배우로 활동했다. 이처럼 윈슬렛 가문은 대대로 연기를 하는 배우 집안으로, 케이트 역시 가문의 재능을 물려받아 11세 어린 나이에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어린이 시리얼 광고에 출연하고,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1994년 175:1의 경쟁률을 뚫고 피터 잭슨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로 스크린 데뷔를 하게 된다. 그녀는 극중 살인을 저지르지만 순수한 십 대 소녀의 얼굴을 지닌 줄리엣을 연기했고, 이 작품을 통해 런던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부터 대영제국 훈장 수훈까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데뷔부터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일찍이 대중과 평단에 눈도장을 찍은 케이트 윈슬렛은 그다음 작품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타이타닉>을 통해 다시 한번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아깝게 수상은 불발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온 그녀는 2008년 <더 리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조연상을,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골든글로브 주연상을 석권하며 그간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에만 7번 노미네이트되었고, 2012년 무대 예술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기도 했다.



3번의 결혼과 3명의 자녀

케이트 윈슬렛 SNS

탄탄대로였던 배우 생활과는 반대로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첫 결혼은 1998년이었다. 영국의 영화감독 짐 트리플턴과 웨딩 마치를 울리고 2000년 첫 딸 미아 트리플턴을 얻었다. 하지만 2001년 이혼하고, 2년 뒤 2003년 또 한 번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 샘 멘데스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같은 해 첫아들 조 알피 윈슬렛 멘데스를 낳고, 두 사람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지만 2011년 끝내 이혼한다. 이후 2012년 영국 최대 부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의 조카 네드 로큰롤과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2013년 베어 블레이즈 윈슬렛을 득남했고, 현재까지 큰 잡음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찐 남사친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SNS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할리우드의 대표 남사친-여사친이자 소울메이트로 유명하다. 영화 <타이타닉>에 함께 출연하며 절친한 사이가 된 두 사람. 케이트의 표현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남편보다 더 남편 같다”고 할 정도로 남다른 우정을 자랑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레오 삼촌”이라고 부르며, 2012년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케이트 윈슬렛과 네드 로큰롤의 결혼식에서 그가 신부 입장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2016년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을 때 케이트는 마치 자신이 수상한 듯 감격하며 축하해 주기도 했다.


남다른 사이즈의 그녀

<대학살의 신>

스키니한 할리우드 배우들 틈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풍만하고 건강미 넘치는 몸매는 단연 돋보인다. 최근에는 나이가 들며 다소 살이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녀는 10대 데뷔 시절부터 통통한 체격을 유지해왔다. 포털 사이트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몸무게’가 자동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다. 16살 때는 몸무게가 90kg였고 이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또한 그녀의 발 사이즈는 US 11로, 한국 사이즈로 환산하면 약 275mm이다. 여자인데다 169cm인 그녀의 키를 감안하면 굉장히 큰 사이즈인 것인데, 그녀에 의하면 어머니의 발 사이즈는 US 13, 약 290mm라고 하니 발 크기도 유전이 아닌가 싶다.


출연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5

<이터널 선샤인>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 중 스스로 좋아한다고 말한 작품 5편은 다음과 같다. 그녀의 데뷔작 <천상의 피조물>과 함께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터널 선샤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결혼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레볼루셔너리 로드>, 그녀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 전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티브 잡스>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이터널 선샤인> 속 클레멘타인 역할이 그녀의 최애 캐릭터라고 밝혔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