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카이스트·삼성 출신 의사가 한숨 푹푹 쉬다 벌인 일

조회수 2020. 9. 18. 15: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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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엔지니어➝치과의사➝블록체인 전도사로
메디블록 고우균 대표
의사⋅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경력으로 창업
세계 첫 블록체인 기반 의료정보 시스템 구현 목표

정보(Information)에도 유행가 가사처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것’이 있다. 바로 의료정보다. 의료정보는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지만 대부분 병원이 보관하고 있어 활용이 쉽지 않다. 환자가 ‘내 정보를 사용해도 된다’는 동의를 하면 활용할 수 있긴 하나 많은 병원들이 굳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료계에 쌓인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아놓고 활용한다면 어떨까. 일단 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입는 혜택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 일차적으로 병원을 옮겨 다닐 때마다 같은 검사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다. 병 이력을 몰라 발생할 수 있는 의료 과실도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이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이은솔씨와 메디블록을 창업한 고우균(34) 공동대표다. 공교롭게 둘 다 의사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두 가지 직업을 경험했다.


대기업⋅치과의사 버리고 창업 뛰어든 이유는


메디블록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의료정보 플랫폼을 만든다. 지난해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암호화폐공개(ICO)를 진행, 총 70개 국가에서 6500여명이 투자해 120억원을 조달했다. 메디블록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인 '메디토큰'은 메디블록이 만든 플랫폼에 개인, 병원 등 각 주체들이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활용하는 행위에 대한 보상 수단이다. 개인이 의료정보를 제공하면 토큰을 준다. 또 병원이 환자의 허락을 받아 정보를 제공해도 돈처럼 쓸 수 있는 토큰을 받을 수 있다. 과학고 출신 동갑내기가 의기투합해 시도한 사업이다.


고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콜롬비아대학에서 컴퓨터사이언스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3년 6개월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좀 더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어 궁리하다가 스물여덟에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도전, 치과의사로 전직했다. 현재 직업은 스타트업 대표다. 의료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IT지식을 활용해 극복해보고 싶어 도전한 길이다.  

출처: jobsN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

“대학에서 IT를 전공했기 때문에 치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병원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들을 맡게 됐어요. 이전까지 가장 최신 IT기술을 다루는 곳에 있다가 병원 IT시스템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1970~80년대 IT를 보는 것 같았어요. 시스템 효율성보다 안정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무척 강했어요. 의료인으로서 이해하지만 IT를 경험한 입장에서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의전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병원에서 수십 가지 검사를 해도 흔한 ‘검사 결과표’ 한 장 손에 쥐고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의사의 구두 설명에 그친다는 얘기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하기 쉽지 않다. 그는 강남 유명 교정전문치과에서 일할 당시 간단한 IT 프로그램을 활용해 환자들에게 6페이지 정도 되는 검사지를 제공하자는 의견을 병원에 냈다. 막내 의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병원은 페이퍼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실행했다.


“환자들은 의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도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어요. 마주 보고 있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도 많이 물어볼 수도 없는 분위기죠. 이러한 현상은 의료정보의 비대칭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을 해결하고 싶었어요. 일하던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검사 결과 리포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도했는데 결과가 좋았어요. 전에 없던 친절한 서비스를 받은 환자들은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환자가 검사 후 실제 치료를 받는 비율도 높아지니 병원 입장에서도 나쁠게 없었고요. 메디블록은 이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개인이 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통합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의료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의료진도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해질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출처: 메디블록 홈페이지
메디블록 '약올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블록체인이 우리가 구현하고 싶은 것 해결”


이같은 문제의식은 고교 동창인 이은솔 공동대표를 만나면서 구체화됐다. 이 대표는 과학고 졸업 후 한양대 의대에 진학, 영상의학과 전공의로 살고 있었다. 의대를 다니면서도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IT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 대표는 고 대표와 여러 가지 면에서 얘기가 잘 통했다. 둘 다 의사로 일하면서 느낀 것들을 얘기하자 공통분모가 생기기 시작했다.


“은솔이와 얘기하면서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의료 정보를 어떻게 모으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생각해냈어요. 블록체인은 2008년 말 무렵 관심들이 생겨났는데, 그때는 사실 공감하지 않다가 2016년에 우리가 풀지 못한 숙제를 블록체인을 통해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죠.”


환자, 병원 등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는 의료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신뢰성과 투명성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중앙 서버 없이 블록 단위의 데이터를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정보를 분산해서 처리하고 수천 개의 컴퓨터가 원장을 공유하기 때문에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정보의 위 변조가 어렵다는 얘기다. 메디블록은 규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각 병원의 의료정보를 모으고 관리하는 플랫폼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출처: jobsN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

“의료정보는 개인건강기록을 담은 민감한 데이터이다 보니까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의료정보에 대해선 많은 규제들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요. 우리가 하려는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는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의료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어요.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공개하고 병원은 개인이 동의한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인데요. 의료정보 플랫폼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참여도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의료계의 카카오톡’ 되고 싶어”


‘의료 정보를 통합한다’는 개념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기존 의료업계에서는 개인건강기록(PHR)이라는 의료정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메디블록은 여기에 블록체인의 신뢰성을 더한 새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메디블록은 지난 8월 첫 번째 애플리케이션 ‘약올림’ 베타버전을 공개했다. 환자가 받은 처방전을 카메라로 찍어 약올림 애플리케이션에 올리면 본인인증을 통해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는다. 내년 1, 2분기 중 론칭할 메디블록의 플랫폼에 약올림 서비스를 올릴 계획이다.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환자와 병원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이 돌아갈까.


“환자들은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서류를 챙기고 했던 검사를 다시 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개인들은 나의 의료정보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죠. 병원은 방대한 환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를 심화하면서 맞춤형 정밀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서울대 본원, 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 위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의료정보 연합체를 만들어 갈 겁니다. 카카오톡이 일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라면 우리 플랫폼은 의료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종의 ‘의료계 카톡’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플랫폼 위에서 다른 서비스 사업자들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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