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 방의 아이돌 브로마이드를 뜯었지만

조회수 2021. 10. 28. 15: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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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우리 집 근처 미군 부대에 폭발물 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다. 깊은 새벽, 경찰의 대피 안내 방송을 듣고 급하게 집을 떠나야 했다. 엄마는 통장과 보험증서 같은 걸 챙겼고, 나는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노란색 프로스펙스 가방에 H.O.T. 사진첩만 챙겨 나왔다.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네가 지금 아이돌 좋아할 때야!”였던 것 같다. 공부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며 방에 붙인 브로마이드를 뜯고 텔레비전을 없애기도 했다. 그러면 내가 공부를할 줄 아셨겠지만, 그 덕분에 만화책을 많이 봤고, 또 그 덕분에 학교 축제 무대에서 '명탐정 코난'의 주제가에 맞춰 춤을 추고 소중한 흑역사를 얻었다.

내 방의 방탄소년단 브로마이드 / ©최이삭

나의 이야기(시간 여행 주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아이돌을 싫어했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쁜 것, 질 낮은 것이 되곤 하니까. 그러나 이해받지 못해서 다행이기도 했다. 덕질은 아버지가 절대 알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자유로웠다. 집 밖에도 ‘아버지’ 는 있었다. 음악 프로그램 공개방송에 가면 남자 어른들이 와서 시비를 거는 일이 종종 있었고, 텔레비전엔 가출한 사생팬 관련 뉴스가 자주 나왔다. 팬들이 소속사 사장의 차를 부순 사건과 유명 남자 아이돌의 스캔들 상대 여성 가수에게 칼과 피 묻은 협박 편지를 보낸 사건이 피해자의 권리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팬덤에 대한 멸시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며 20여 년동안 방송에 거듭 소환되었다. 나는 겨우 브로마이드 몇 장 내 방에 붙였을 뿐인데.

부모님과 방탄소년단 액자가 있는 내 방 / ©최이삭

어른이 되어 내 집(전세)을 갖게 되고 방탄소년단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이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내 아이돌의 브로마이드를 강제로 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세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6개월이나 남았으니까. 아버지는 아이돌이 내 인생을 망칠까 봐 걱정했지만, 나는 멀쩡하게 자라 이렇게 아이돌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인생은 역시 살아봐야 안다.

내집(전세)에서 어른의 기쁨을 느끼며 방탄소년단 온라인 콘서트 'Pemission to dance on stage' 관람하기 / ©최이삭

딴짓, 길티 플레저, 숨쉬기

‘아이돌에 미친 여자애’ 취급받던 팬들이 어른이 되었다. 1세대 아이돌 팬들이 과장에서 부장급 연차가 되어 사회의 기성세대에 진입하고, 2세대와 3세대 팬들도 속속 사회에 진출하며 아이돌 덕질은 한국 사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케이팝이 일종의 기간산업 같은 게 되면서 ‘아이돌이 가수인가?’ 같은 질문을 하고 팬들을 개념 없는 집단으로 몰아세우곤 하던 언론들은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이 아이돌의 이름을 기사에 끼워 넣게 되었다. 내 아버지는 브로마이드를 뜯었는데, 옛 직장 동료는 초등학생 딸과 ‘포카’(포토카드) 교환을 주선하기도 했다. 인생은 참 달콤 쌉싸름하다.

팬덤의 모습도 변했다. 아이돌만 1세대, 2세대, 3세대가 있는 게 아니라 덕질에도 세대가 있다. 1세대 아이돌 덕질은 ‘딴짓’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덕질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하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가부장적인 시대 분위기에서 미성년자 여성이 주축인 아이돌 팬덤은 계도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바꿀 수 없었다. 덕질은 너무 즐거우니까. 옛날 사람 같은 말을 잠깐 하자면, (잠깐이 아닌 것 같지만) 전국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되며 ‘팬페이지’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학급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덕질도 강력했다. 소중한 흑역사를 하나 더 꺼내자면, 학교 축제에서 H.O.T.의 ‘아이야!’ 춤을 춘 적이 있다. 엉망진창의 댄스 브레이크도 있었다. 그때 반 애들이 전원 강당으로 와서 공식 응원법에 맞춰 흰 풍선을 흔들어줬다. 이때부터 성선설을 믿기로 했다.

H.O.T 2000년도 팬미팅 사진ⓒSMTOWN

2세대 덕질은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였다. HAN과 해학의 민족답게 아이돌 팬들에게 쏟아지던 사회적 멸시에 달관하고 덕질이나 열심히 하는 데에 집중했다. 성인 팬들에게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돌 좋아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나에게 이 말을 칭찬처럼 하곤 했다. 나는 그들의 편견 속에 있는 ‘작고 여린 여자’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멤버십 중심의 다음(Daum) 카페가 팬들의 소통 플랫폼이 되며 기획사가 아니라 팬덤이 주도하는 덕질의 구심이 만들어졌다. 아이돌의 활동 반경이 해외로 넓어지면서 외국어 번역, 영상 편집, 사진촬영 등 팬들의 재능 나눔이 팬덤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2012년 드림콘서트 사진 ©이데일리

3세대 덕질은 ‘숨쉬기’다. 덕질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숨 쉬듯 하는 행위가 되었다. 1세대와 2세대는 게시판의 ‘새 글’을 다 읽으면 그날 치 덕질이 끝났다. 3세대의 덕질은 끝이 없다. 아이돌이 공백기 없이 활동하기 때문에 일단 봐야 할 공식 콘텐츠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기획사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불과하다.

케이팝의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되고, 3세대 덕질의 플랫폼이 실시간성과 다자간 대화가 특징인 트위터와 만나며 덕질의 생태계 같은 게 만들어졌다. 1·2세대 덕질의 정체성은 ‘젊은 여성’에 가둬져 있었지만, 3세대의 덕질의 정체성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견해·감각·소속·경험을 정체성으로 둔 유능한 팬들이 능력을 발휘해 투표·차트 분석·번역·디자인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이렇게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빠르게 네트워킹하며 내 아이돌을 위한 최선의 목표를 설정하고, 독려하고, 의문과 마찰을 해결하며 나아간다. 이 모든 여정이 바로 3세대 덕질이다. 4세대 아이돌을 정의하는 데 아직 주저함이 있는 건 3세대 덕질 이후 모델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 콘서트 ‘맵 오브 더 솔 원'을 선보이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케이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아이돌을 제조된 존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돌은 케이팝이라는거대한 공장의 생산품이고, 팬들도 공장의 일부로 차가운 컨베이어벨트를 통과해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조회 수를 높이고 성과를 만든다고 본다. 동의하지 않는다. 덕질은 사랑과 연대에서 출발한다.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랑과 연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이 사회적 질병으로 분류되는 시대다. 그래서 더더욱 인생에는 아이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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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이삭
케이팝 칼럼니스트. 인생을 아이돌로 배운 사람. 인스타그램 @isakchoi

이 글은 빅이슈 261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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