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side The Park] 베이스볼 워크숍 전찬호

조회수 2021. 8. 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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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와 친해지길 바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 산 글러브를 개봉한다. ‘좋은 글러브를 가졌으니 내가 바로 내일의 MVP? 야구계를 평정해야지!’ 하는 기대감으로 글러브를 끼는 순간, 뭔지 모를 불편함이 손을 휘감는다. 불편함은 둘째 치더라도 캐치볼을 해보니 포구가 잘 안 되고 야구공이 글러브에서 튀어 나간다. 그 이유는 글러브에 길이 들지 않아서다. 좋은 글러브를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게 글러브를 길들이는 것. 하여 글러브 길들이는 법을 전수하기 위해 베이스볼 워크숍의 전찬호 실장을 초빙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과감하게 글러브를 해체하고 뚝딱뚝딱 길들이는 그의 예능감 넘치는 작업 영상도 꼭 챙겨보길 바란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박소정 Location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글러브계의 MVP

이번 ‘더그아웃 인사이드 더 파크’의 주인공은 ‘글러브 마법사’ 베이스볼 워크숍의 전찬호 실장입니다.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죠? (7월 14일 인터뷰)
저한테도 이런 날이 있네요. <더그아웃 매거진>은 제가 기차나 버스를 타고 멀리 갈 때 항상 서점에서 사던 책이거든요. 그런 매거진과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초면인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저는 수원시 인계동에서 베이스볼 워크숍이라는 글러브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구 글러브 길들이기 작업과 글러브 판매 등을 하고 있고 작업실을 운영한 지 7년 정도 됐네요. 지금은 개인 유튜브 채널인 ‘MVPJ글러브작업실’도 운영 중이에요. 야구에 관심 있는 분들이 흥미 있게 보실 콘텐츠가 많을 겁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글러브 길들이기란 뭔가요?
구매 후 처음 개봉한 글러브는 딱딱하고 구조가 안 잡혀 있어서 경기에서 바로 쓰기 어렵잖아요. 그런 글러브를 경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다듬는 일련의 과정이 글러브 길들이기라고 봅니다. 상당히 재밌어요. 갓 태어난 글러브가 연륜이 묻어나는 노련한 글러브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작업이거든요. (글러브를 경기에서 사용하기 위해선 길들이기가 꼭 필요한 거네요?) 그렇죠. 길들이기 작업으로 글러브에 구조를 만들어야 공이 들어오는 자리가 생겨요. 길들이기를 통해 야구공이 글러브의 어느 부위로 들어오든지 동일하게 잡혀야 한다는 게 제 글러브 철학 중 하나입니다.

자세한 작업 과정이 궁금한데요.
제가 주로 하는 방법은 많은 분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아닌데요. 먼저 글러브엔 ‘웹’이라고, 공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부분이 있어요. 그 웹을 글러브 본체에서 떼고 글러브 본체, 웹, 끈피를 따로 길들입니다. 각각의 밸런스를 잡고 난 뒤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잘 길든 글러브란 어떤 걸까요?
글러브를 꼈을 때 편안한 느낌을 받아야 해요. ‘내가 이 글러브를 끼고 경기를 하면 글러브 때문에 공을 놓칠 일은 없겠다’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게 길이 잘 든 글러브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부위로 공을 받아도 안정감 있고 강하게 공을 물어주는 것도 핵심입니다.

글러브 길들이기가 취미였다가 직업이 됐어요. 서사가 따로 있나요?
아마 굉장히 긴 얘기가 될 거예요. 어릴 때부터 야구를 아주 좋아했어요. 중학생 때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죠.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님을 만나서 입단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학교를 1년 동안 쉬면서 몸을 만들어 오라고 하셨어요. 근데 그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아서 야구를 포기했죠. 그리고 군대에 갔는데 야구 경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선임을 만났어요. 그때부터 다시 야구를 하게 돼서 대학원에 가서도 야구를 했어요.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게 되면서 좋은 글러브의 필요성을 깨닫고 알아보던 중 글러브를 길들이는 작업을 알게 됐어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신기하기도 했고요. 대학원생이라 한창 돈이 없을 때인데도 용돈을 아껴서 산 글러브를 작업 맡기고 하면서 흥미가 점점 쌓였어요. 논문을 써야 하는데 연구 자료가 아니라 글러브 정보만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고요. 전국에 유명하다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보고 야구용품점도 찾아다녔어요. 일본도 다녀왔어요. 그렇게 쌓은 지식으로 글러브 길들이기 작업을 하고, 작업기를 작성해서 야용사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그 글이 대박이 난 거죠. 지금도 조회수가 상당할 거예요. 10년 정도 된 제 데뷔 글인데 글을 올린 후로 많은 분이 쪽지로 문의도 하셨어요. 문의도 쇄도하고 인정도 받으니까 자부심이 생겼어요. 초반엔 회사에 다니면서 매주 글을 올리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퇴사하고 글러브 작업실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됐죠.

글러브를 길들이는 작업을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을 당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반대하셨죠. 사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공공기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거든요. 연구소 창립 멤버로 들어가서 굵직한 사업들을 맡아서 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탄탄대로인 직업인데 그걸 포기한 거니까요. 그래도 글러브 길들이기가 재밌고 정말 하고 싶었어요. 지인들은 다 저보고 미쳤다고 했죠. 드디어 정신을 놓은 거라고요. (웃음) 지금 부모님께선 제가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고 하세요. 좀 하다가 그만두고 바로 대학원에 다시 갈 줄 아셨대요.

지금은 많은 프로 선수의 의뢰도 받고 야구 동호인 사이에서도 유명해졌죠. 각종 야구 콘텐츠에서 글러브 전문가로 초대되기도 하는데, 글러브 장인이라는 자부심이 좀 생겼나요?
제가 글러브 장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장인 지망생, 전문가 지망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글러브 공방을 운영하는 no.7 형님과 예전에 나눴던 얘기가 있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글러브 장인이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형님이 “한 20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최소 10년이라고 생각했는데 20년이라고 하시니까 저는 죽을 때까지 장인 지망생일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정해줄 때 비로소 장인이 될 수 있겠죠. 아직은 멀었어요.

사업을 운영하려면 신경 쓸 부분이 많죠. 본인의 사업 철학이 있다면요?
첫 번째는 완성도라고 생각해요. 작업물의 완성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게 안 된다면 현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죠. 예전에는 야구용품을 홍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음 카페뿐이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다양해졌죠. 유튜브도 있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도 있잖아요. 그런 플랫폼의 활용법을 배우고 콘텐츠를 잘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MVPJ글러브작업실

MVPJ글러브작업실에 최초로 의뢰한 KBO리그 선수는 누구인가요?
지금 상무에서 군 복무 중인 KT 위즈의 정성곤 선수예요. 야용사에 처음 올렸던 글의 글러브 의뢰인이 정성곤 선수의 친구인데 저를 추천해줬나 봐요. 그래서 기꺼이 작업을 해줬는데 그 글러브를 끼고 프로 데뷔 첫 승을 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매우 의미가 있죠. 그 선수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여러 프로 선수의 글러브를 다뤄봤을 텐데요. 의뢰가 가장 까다로운 선수가 궁금해요.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몇 번 언급했는데, 바로 두산 베어스의 김인태 선수예요. 본인도 알 정도입니다. 참 까다로워요. 제가 봤을 땐 되게 만족스럽게 작업한 글러브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굉장히 불만인 경우가 있고, 오히려 제가 ‘아, 이건 선수가 못 쓸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던 글러브를 경기에서 잘 쓰는 일도 있어요. 오랫동안 김인태 선수를 지켜봤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작업 자체가 힘들었던 때도 있나요?) 가끔 많이 손봐야 할 것 같은 글러브를 의뢰받곤 해요. 글러브를 아예 다시 만들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부득이 선수들이 그걸 써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계약 때문이라거나 쓸 수 있는 다른 글러브가 전혀 없거나 하는 상황 말이죠. 그런 상황에도 선수들이 처음부터 잘 만들어진 글러브처럼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작업하죠. 잘 쓰면 다행인데 그 선수가 결국 그 글러브를 경기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내 역량이 아직 부족하구나’ 하고요. 한편으론 그 글러브 제조사가 원망스럽기도 해요. (어느 제조사인가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큰일 납니다. (웃음)

의뢰를 맡긴 선수 중에는 현재 KBO리그에서 주목받는 선수도 많아요. 당연히 뿌듯함도 느끼겠죠?
그렇죠. 선수들이 제가 작업한 글러브를 끼고 활약해서 국가대표로 발탁되거나 한국시리즈같이 큰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 뿌듯함을 느껴요. 제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좋죠. 그 선수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느낌이에요. 한편으로 여러 번 의뢰를 맡다 보면 선수들의 모습도 꾸준히 지켜보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도 성적이나 야구에 대한 태도가 한결같이 꾸준한 선수들도 있고 살짝 변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선수들을 여럿 지켜보다 보니까 ‘아, 이 친구는 지금쯤이면 이런 반응이 나올 때가 됐고, 좀만 더 기다리면 다시 이렇게 변하면서 실력으로나 인성적으로 성장하겠다’라고 생각하곤 해요. 실제로 들어맞을 때도 있어요. 모쪼록 제가 글러브 작업을 해드린 선수들이 승승장구하길 바랍니다.

때론 작업해준 글러브로 경기력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점에 부담감도 느낄 텐데요.
생활 체육 야구를 하시는 분들이나 KBO리그 선수들의 의뢰를 맡을 때도 가끔 부담을 느끼곤 하는데, 한창 야구선수로 성장해나가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의 의뢰는 매번 극도로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 선수들은 이미 경쟁을 뚫고 프로에 진출했기 때문에 좀 낫죠. 그런데 아마야구 선수들은 본인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줘야 하고 성장해야 하는 시기인데, 제가 혹시라도 잘못된 글러브를 주면 그 친구들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중고등학생 의뢰인들이 프로에 무난히 갔을 때는 성취감을 느끼지만, 혹시라도 지명받지 못하거나 진학에 실패한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글러브마다 특징이 다른 데다가, 의뢰인들의 플레이 스타일도 다양하다 보니까 여러 변수 속에서 작업하는 고충도 있겠네요.
저도 지금 그 부분에서 길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글러브 길들이기의 기본 원리는 똑같아요. 결국은 글러브를 이용해서 야구공을 잘 잡을 수 있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사람 손으로 야구공을 잡는다는 기본 줄기에서 각 글러브의 종류나 브랜드별 차이점에 따라 파생이 되는 문제라고 봐요. 대부분 글러브는 쓰는 사람이 그 줄기 안에서 바르게 사용하면 좋은 글러브로 남게 돼요. 그런데 그 줄기를 벗어나 또 다른 줄기를 만들어 사용한다면 글러브에도 무리가 갑니다. 예를 들어 글러브 사용 방법에 맞지 않거나 야구 기본기에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걸 얘기할 수 있겠죠.

글러브와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나요?
no.7 형님과 가끔 안부 인사를 물으면서 지내고 있고요. 저는 주로 글러브 회사들과 연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곳에서 글러브에 대해 제 의견을 물어보시기도 하고 제가 먼저 의견을 드리기도 하고요.

#글러브와 친해지는 방법

글러브 길들이기 초심자가 자주 하는 실수는 뭔가요?
글러브를 자꾸 오므리려고 하세요. 글러브가 잘 다물어져야 공이 잡힌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글러브가 오므려지는 거랑 공이 잡히는 거는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글러브가 어떤 구조로 공을 감쌀 수 있는지, 그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오므리기만 하는 거죠. 근데 신기한 건 그분들에게 야구공을 맨손으로 잡아보라 하면 잘 잡으세요. 마치 프로 선수가 글러브질을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글러브만 끼면 캐스터네츠처럼 움직이려고 해요.

만약에 방금 산 새 글러브를 개봉해서 경기해야 할 때 긴급조치로 하는 길들이기 방법이 있나요?
정말 급하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긴 해요. 스팀기에 찌거나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방법이 있죠. 물에 살짝 담갔다가 꺼내는 방법도 있고요. 여름철같이 더울 때는 달궈진 차 트렁크에 넣었다가 꺼내서 만져줘도 돼요. 그래도 그렇게 속성으로 하는 방법은 정말 긴급할 때 하셔야 해요. 전문가가 아니라면 힘들 수도 있거든요. 될 수 있으면 시간 여유를 두고 길들이기 작업을 하시기 바랍니다. (속성 길들이기는 힘든 거군요.) 글러브 길들이기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거니까요.

또 상황 질문인데요. 이미 길이 든 중고 글러브를 구매해서 새 사용자에게 맞게 새롭게 길들이는 게 가능한가요?
원칙적으로는 가능해요. 그런데 힘든 예도 있어요. 저처럼 손이 작은 사람이 이전에 손이 큰 주인을 만난 글러브를 새롭게 길들이고 사용하려면 문제가 있어요. 손이 큰 주인을 따라 글러브의 가죽이 다 늘어난 상태라서 손이 작은 분들에겐 글러브가 헐겁겠죠. 또 가죽이 다 터진 경우에도 새롭게 길들이는 게 힘들어요. 그런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서 글러브를 다시 길들이는 건 가능합니다.

소위 ‘파닥파닥한’ 글러브라고 하죠. 글러브가 유연해서 손의 움직임이 편해 야구공을 잡는 게 더 쉬울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글러브의 움직임보다 중요한 건 야구공을 잡는 구조가 만들어졌느냐는 겁니다. 흔히들 말하는 파닥파닥한 글러브는 구조보다 글러브의 움직임을 더 우선으로 생각해서 만들게 돼요. 파닥파닥한 글러브를 만드는 건 그저 시간만 좀 투자하면 되는 거라 매우 쉬워요. 구조는 소홀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구조를 만든다는 건 시간도 걸리고 작업을 정확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런 정확한 작업을 거쳐 구조가 만들어지면 따라오는 게 움직임이에요.

일반적인 야구 동호인은 글러브 관리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나 지식에서 제약을 느껴요. 틈틈이 할 수 있는 글러브 길들이기 방법이 있을까요?
요즘 같은 날씨에 할 수 있는 팁은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큰 물체를 글러브 안에 넣어두고 붕대로 묶어서 방치하는 거예요. 야구공에 양말을 감아서 넣는 것도 좋아요. 지금같이 더울 때는 글러브를 차에 30분 정도 뒀다가 꺼내면 글러브의 형태가 만들어져요. 이어서 글러브를 좀 벌렸다가 다시 묶고 널어놓는 걸 며칠 반복하면 어느 정도 각이 잡힙니다. 포수미트는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대부분 글러브는 캐치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각이 나와요. (겨울에는 어떻게 보관하는 게 좋나요?) 겨울은 건조하기 때문에 오일을 구매해서 아주 얇게 펴 발라주는 게 좋아요. 그리고 절대로 차가운 차 트렁크 안에 글러브를 장기간 넣어두면 안 됩니다. 추우면 가죽이 얼어서 길이 다 망가지거든요.

경기 직후 땀이 가득 찬 글러브를 건조할 때 추천하는 방법은요?
주로 글러브 내피 쪽에 땀이 차 있을 텐데요. 마른 천으로 닦을 수 있다면 살살 닦아 주세요. 아니면 에어컨 근처나 환풍이 잘 되는 곳에 두기만 해도 됩니다. 좀 더 꼼꼼하게 바짝 말리고 싶다면 건조기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건 글러브가 너무 건조해질 수 있어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이틀 정도 선풍기를 돌려서 글러브를 말려줍니다. 강풍 기준으로 한 12시간 정도면 말라요. (12시간이요?) 네. 다 실험해 본 결과입니다. (웃음)

생활 체육 야구에서 맡고 있는 포지션이 궁금해요.
좋게 말하면 올라운드 포지션이고요. 나쁘게 말하면 빈 포지션에 들어갑니다. (웃음) (경기에서는 어떤 글러브를 사용하나요?) 포지션마다 다른 글러브를 써요. 포수일 때는 하타케야마 포수미트를, 투수일 때는 미즈노를 씁니다. 내야수를 하게 되면 얼마 전까지는 제트를 썼는데 지금은 작업실에서 안 팔리고 있던, 또 제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알티스 글러브를 씁니다. 외야수를 보면 미즈노고요. 포지션별로 각 제조사의 대표 글러브를 씁니다.

글러브 전문가로서 보기에 국내 글러브 제조사들의 역량이 이전보다 크게 발전했나요?
제 생각엔 상향 평준화됐다고 봐요. 자체 개발 및 생산까지 하는 제조사가 늘어나는 추세고 예전에는 알티스가 독보적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제조사들도 잘 쫓아가고 있습니다. 포수미트의 경우엔 원에이티에서 만들어지는 글러브가 일본 제조사 글러브에 견줘도 괜찮을 정도예요. KBO리그 선수들도 주로 쓰고 있어요.

국내외 제조사 글러브 중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글러브가 있나요?
저는 예전부터 제트의 글러브를 좋아했고 자주 썼어요. 그리고 가끔 제트가 좋다고 주위에 얘기도 하곤 했는데 당시에는 제 말에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후에 제트의 겐다 모델이 유명해지면서 너도나도 제트 글러브를 엄청나게 찾더라고요. 그때 ‘내 말이 아직은 설득력이 없구나. 더 노력해야겠다’ 하고 반성했던 적이 있어요.

#만능 크리에이터

유튜브 채널 운영이 활발해요. 올리는 콘텐츠는 직접 기획하는 건가요?
네. 제가 다 기획합니다. 글러브 길들이기가 한정적이고 마이너한 분야다 보니 자칫 지루해지기 쉬워서 각 콘텐츠마다 조금씩 차별화를 주고 있습니다.

글러브를 위한 필라테스 영상을 흥미롭게 봤어요. 필라테스장에서 길들이기를 한다는 게 신선했고 ‘습습후후’란 중독성 있는 멘트로 예능감도 살렸어요.
그 영상을 제작할 당시 시리즈로 생각했던 게, ‘이런 곳에서 글러브를 왜 길들여?’라고 생각이 들 만한 곳에서 글러브 길들이기를 하는 거였어요. 첫 번째가 부산 해운대 바다였고 두 번째가 야구장이었어요. 세 번째가 필라테스장이었는데 장소가 조용하다 보니 ASMR 버전으로 찍어볼까도 생각했죠. 근데 좀 심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혼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애드리브를 다 넣었죠. 습습후후도 그중 하나예요. 근데 저는 굉장히 재밌게 찍었는데 조회수는 제일 안 나왔어요.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시청자들을 웃게 하는 예능감을 가졌어요. 타고난 건가요?
제가 예능감이 있던가요? 저는 재미없겠다고 생각한 게 방송에 다 나가긴 하더라고요. 원래 장난을 좋아해서 친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장난을 엄청나게 칩니다. 그런 성격이 반영됐나 봐요.

생글생글 웃는 상이어서 인상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을 것 같아요.
네. 나쁜 짓은 안 하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배우 차태현, 남궁민에 이어 한때 살인미소로 유명한 김재원 느낌도 있다고 하던데요?) 누가 그러던가요? (들어본 적 있나요?) 종종 듣긴 했어요. 그런 허위사실은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웃음)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운영할 예정인가요?
당분간 글러브를 만지는 기술이나 지식을 좀 더 늘려나갈 예정이에요. 사실 제가 급성장한 경우라서 무너지는 것도 빠를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기본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글러브 판매 쪽도 관심이 있는데, 아직 먼 얘기예요. 비밀리에 아무도 모르게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기는 해요. (수제자 양성 계획도 있나요?) 일단 저부터 커야죠. 제가 무럭무럭 자란 다음에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기계나 물을 이용한 길들이기 방법에서 더욱더 새로운 길들이기 방법들이 새로 등장하겠죠?
워낙 글러브 시장이 다양하게 변하다 보니 당장 새로운 방법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예요. 저도 새로 나온 방법이 더 좋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도입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아직은 제가 해본 방법의 결과물이 제일 좋아서 지금의 방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찬호에게 야구란 뭔가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제 삶이죠. 제 밥줄이자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니까 직장이자 취미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럼 글러브란 뭔가요?) 미안함이요. 지금도 작업실에서 제 손길을 기다리는 글러브가 많이 밀려있거든요. 글러브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본인의 글러브와 절친이 되고 싶은 야구팬들에게 한마디하고 마칠게요.
나름 글러브와 관련해서 성장했던 얘기들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제 유튜브 채널에도 글러브와 관련된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갈 테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러브 길들이기가 어려우시다면 언제든지 저희 작업실을 방문해주세요. 제가 친절하게 상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전찬호 실장의 나긋나긋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강단 있는 말투에 어느새 귀를 쫑긋하며 집중할 수밖에 없던 인터뷰였다. 인터넷에선 전찬호 실장 외에도 여러 글러브 전문가가 공유한 길들이기 작업 영상과 설명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생활 체육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본인의 글러브 길들이기 노하우를 담아 공유한 글도 많다. 글러브 초심자들에겐 단비와 같은 정보들이다. 다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본인의 포지션, 플레이 방식에 맞게 글러브를 길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수가 쓰는 방법이라 하더라도, 고가의 길들이기 작업을 거쳤더라도 실전에서 빈번히 실수를 유발하는 글러브는 길이 잘못 든 거다. 섣불리 글러브를 길들이려 하지 말고 글러브에 관한 탐구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진행해보자. 부디 최적의 길들이기 방법으로 당신과 당신의 글러브가 더욱더 친해져 앞으로 MVP 길만 걷길!

▲ 더그아웃 매거진 124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24호(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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