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취준 고민하던 장교 출신 동국대생, 또 다시 대학 들어간 이유 

조회수 2021. 10. 08. 09:51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문과생의 기술직 취업기

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한전KPS에서 일하는 모습. /이달빛씨 제공

“비결이 뭔가요?”

“학교 교과과정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공기업 발전소 기술직으로 일하는 이달빛(28)씨에게 취업 비결을 물었더니 고교 모범생에게 들을법한 답을 들었다. 한때 고고학자를 꿈꾸며 4년제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했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기란 만만찮았다.

지름길을 찾다 내린 결론이 생전 처음 받는 기술 교육이었다. 기술을 배워 취업하겠다는 결심을 2년 만에 현실로 만들었다. 현재 한전KPS에 다닌다. 문과생이 공기업 기술직으로 취업한 비결을 들었다.

◇고고학자에서 기술자로

어려서부터 고대 유물이나 토기에 관심이 많았던 이달빛 씨는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했다. /이달빛씨 제공

역사광이었다. 친구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 고대 유물이나 토기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놀았다. 2012년 동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했다. 3학년이 되던 해 예비장교후보생으로 선발돼 2016년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장교 임관 전에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합격증을 받아둔 상태로 군대에 갔죠. 2년 4개월에 걸친 복무 기간동안 진로를 고민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지, 이대로 취업시장에 뛰어들 것인지, 군 생활을 이어나갈 것인지 등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했어요.”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재학시절 유적지 답사 모습. /이달빛씨 제공

이 씨를 가장 고민들게 한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느리더라도 가장 확실한 길을 찾고 싶었다. 고민 끝에 기술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어디에서 일하게 될 지는 몰라도 기술 하나 제대로 익혀두면 분명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학교나 학과를 선택하는 과정은 의외로 수월했다. 등록금이 비교적 저렴한 국립대 중에서 실습위주의 커리큘럼이 짜여진 곳을 찾았다. 학과를 선택할 때 어느 대학에나 있을 법한 학과는 제외했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하지 않을 것 같은 기술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메리트가 있을테니까요.”

◇바닥부터 올라가는 길

폴리텍대학교 반도체융합캠퍼스 전경. /이달빛씨 제공

2019년 3월 폴리텍대 반도체융합캠퍼스 기계품질측정과에 입학했다. 기계품질측정과는 전국에 2~3개 밖에 없는 독특한 학과다. 설계 도면과 완제품을 비교하며 얼마나 정확하게 만들었는지 점검하는 것이 핵심이다.

“들어가니 교육과정이 크게 측정과 교정, 품질관리로 나뉘더라고요. 단순히 측정하는 것을 넘어 불량품이 나온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훌륭한 연주를 위해 피아노 조율이 필요하듯 측정 장비도 교정 작업이 필요하더군요. 이를테면 자가 비틀어져서 10㎝를 9.9㎝로 측정하는 일이 있어선 안되니까요.”

폴리텍대 재학시절 교내 소방 활동에 참여했다. /이달빛씨 제공

이 씨는 교내 게시판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문과생 출신이었기 때문에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교과과정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뛰어들었습니다. 2년 동안 학교 홍보 서포터즈 활동을 했고 화상영어 프로그램을 활용해 영어 실력을 다졌죠. 2020년 계량측정의 중요성 우수사례 공모전에서는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남들이 나서지 않는 일에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과대표도 그 중 하나였다. “수업 시간보다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교수님의 수업 준비를 도왔습니다. 실습에 필요한 장비를 미리 켜놓고 수강 인원에 맞춰 준비해뒀죠. 기계를 만질 기회가 더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귀찮지 않았습니다.”

폴리텍대 기계품질측정과 실습 모습. 측정을 정확하게 하려면 먼저 도구가 정확해야 한다. 이를 교정이라 부른다. /이달빛씨 제공

2학년에 들어서자마자 정밀측정산업기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필기와 실기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자격증인데요. 학교에 개설된 강의만 순서대로 착실히 들으면 충분히 취득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 해 8월 실기 시험까지 통과하면서 자격증을 손에 쥐었죠.”

2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 동기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취업에 성공해 학교를 떠난 것이다. “2년제 과정이다보니 딱 그 무렵이 취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시기입니다. 일찍 취업한 친구들을 보며 조급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저에게도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문과생 출신이 기술직으로 취업

2020년 계량 측정의 날에 열린 '계량측정의 중요성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달빛씨 제공

2020년 9월 한전KPS 신입사원 공개채용이 열렸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면접 등 세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사지원서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서류전형 통과는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 그리고 정밀측정산업기사 자격증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필기시험은 100% NCS였다. NCS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만든 국가직무능력표준을 말한다. 모든 공기업 필기시험에는 NCS가 포함된다. 이 씨는 한전KPS 공채를 준비하며 NCS를 처음 접했다.

폴리텍대 기계품질측정과 실습실. 기계품질측정을 위해서는 도면을 잘 이해하고, 완제품을 잘 측정해야 하며, 측정장비를 잘 관리해야 한다. /이달빛씨 제공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그날부터 한전KPS의 이전 필기시험을 분석했어요. NCS 기본서를 사서 한전KPS에 기출된 적이 있는 영역을 따로 표시했죠. 문제유형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필기시험을 대비했습니다. 시험에 임박했을 때는 기출문제를 풀며 시험 감각을 익혔습니다.”

최종 관문은 면접이었다. 잡플래닛, 잡코리아, 네이버 카페 등의 채용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면접 후기는 모조리 찾아 읽었다. 면접 질문 예상 리스트를 뽑고 그에 대한 답을 키워드 중심으로 준비했다. “처음엔 대본처럼 답변을 써봤는데 국어책 읽듯 말하게 되더라고요. 중요한 단어 위주로 준비하는 것이 기억하기도 좋고 답변이 진정성 있게 들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021년 2월 폴리텍대 기계품질측정과 졸업장을 받는 모습. /이달빛씨 제공

면접은 다대다로 진행됐다. 지원자는 두 명, 면접관은 예닐곱명이었다. “지원 동기, 학창 시절 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준비한 대로 답했는데, 탈락할 것 같았어요. 업무 관련 경험을 묻는 질문에 옆 지원자가 민간업체에서 일한 경력을 내세우더군요.”

2020년 12월 30일. 한전KPS 장비표준부에 입사한 사람은 옆 지원자가 아닌 이 씨였다. “직무 관련 경험은 부족하지만 과대표를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던 경험, 육군 장교 생활을 하며 공공조직을 경험해봤다는 점 등을 어필했습니다. 이러한 점이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학교생활의 연장선

한전KPS 장비표준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휠포크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이달빛 씨. /이달빛씨 제공

이 씨는 한전KPS에 입사해 휠포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포크렌치 등 나사를 조이는 정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점검한다. “폴리텍대에서 실습했던 것들을 그대로 현장에서 적용하며 일하고 있어요. 교정절차 프로세스가 많이 비슷하고 사용하는 장비들의 작동 원리도 비슷합니다. 학교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폴리텍대학에서의 2년은 문과생인 이 씨에게 주어진 새로운 배움의 기회였다. 최종 학점 4.5점 만점에 4.4점으로 졸업했다. “진부하게 들리시겠지만 제 취업의 비결은 따로 없습니다. 학교 생활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후배들을 만나면 꼭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등록금의 뽕을 뽑겠다는 각오로 학교에 있는 수천만원짜리 장비를 수백번 만져봐야 한다고요.”

/이영지 에디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