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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움직이던 젊은 의사가 얼어 붙은 이유

조회수 2021. 07. 21. 1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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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당직 중에 응급실의 호출을 받았다.
아이가 거의 말을 할 수 없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후두를 보려 했지만 아이가 입을 벌리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치열 사이로 주걱을 넣어
혀를 아래위로 조금 움직여 보았다. 목젖이 부풀어 올랐고

입천장이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분명
숨 쉴 때마다 뜨거운 국을 마시는 기분일 것이다.

아이의 오른쪽 편도에 농양이 생겼으니 당장 수술을 해야 했다.
아이의 턱을 벌렸다. 탁구공만 한 부종이 오른쪽 편도를
왼쪽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사이에 관이 있었다. 그 위에
목젖이 대롱거렸다.

핀셋으로 편도를 당겨서 편도와 후두벽을 연결하는 점막을
팽팽하게 폈다. 굴절 메스로 그곳을 절개했다. 굽어진
메스 끝으로 점막을 푹 찌른 다음 멈춤 없이 단번에 잘랐다.

편도의 세로축으로 가위를 돌려서 점막을 계속 잘라나갔다.

“골막박리기.”
간호사가 작은 홈이 나 있는 주걱을 건넸다.
나는 아보카도에서 씨를 빼내는 것 같은 동작을 거듭하여
편도를 후두벽에서 분리했다.

골막박리기로 섬유조직을 채취하려다가
문득 도구를 놀리던 손을 멈추었다.
그 순간 초록색 크림 같은 농이 흘러내렸다.
부패한 고기의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혐기성 세균이었다.

“농양이 대단하군”
염증은 광범위한 괴사를 일으켰다.
녹아내린 조직을 제거해야 했다.
나는 왼손에는 흡입기를, 오른손엔 골막박리기를 들고
편도 뒷벽을 따라 내려가며 눌러붙은 백태를 제거했다.

계속 파내면서 골막박리기를 한 번 더 집어넣으려던 찰나에
내가 파놓은 구멍에 램프 불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얼어붙었다.

저건 뭐지?

내가 파놓은 구멍 아래에 작은 손가락 굵기의 붉고 빛나는
새끼줄이 꿈틀대고 있었다. 경동맥. 심장이 뛸 때마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혈액을 머리로 보내는 관이다.

그 중요한 관을 보호하는 조직의 두께는 1밀리미터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 칼질은 너무 깊었다.
골막박리기를 한 번만 더 휘둘렀다간
얇은 조직막뿐 아니라 동맥벽까지 제거될 뻔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심장은 한 번 뛸 때마다 약 40밀리리터의 피를 혈관으로
발사하며 1분에 70회 정도 뛴다. 1분 만에 아이의 혈액 중
절반 이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나는 절개된 수술부위를 똑바로 쳐다 봤다.
힘이 빠진 내 두 다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
머리카락 한 올 차이.
딱 머리카락 한 올 굵기만큼만 더 파냈어도.

이제 어쩌지?
나는 경동맥을 보았다.
헤드램프 밴드가 내 두개골을 옥죄는 것 같았다.
나는 벌 받는 듯한 기분과 활활 타오르는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둘 다 압도적이었다.

상처 구멍 주위에서 적당히 붉은 빛을 띠는 조직을 골랐다.
그리고 핀셋으로 잡아 혈관 위로 들어 올렸다.
“봉합.”
인두근 섬유막을 조심스레 꿰매었다.
이마에선 땀이 멎었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
“됐습니다” 내가 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관은 제거되었고 아이는 규칙적으로 호흡했다.
아이가 깨어나서 보호 연고로 들러붙은 눈꺼풀을 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이 잘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건 정말 그랬다.

울렁거리는 검은 창문을 따라 걸으며 지하 의국으로 갔다.
내가 지나치는 문마다 그 뒤에는 동료가 하나씩 숨을 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내쉰 긴 한숨이 복도를 날아다녔다.

나는 우리 과 의국 침대에 누워 멍하니 위를 바라보았다.
천장에선 경직된 경동맥이 이상한 굴곡을 그리며
가지를 쳐 나가고 있었다.

*위 콘텐츠는 독일판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 불리는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중 한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턴에서 시작해 전문의가 되기까지, 병원에서 수없이 목격한
삶과 죽음의 순간을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그려내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입니다.

[이 콘텐츠는 위즈덤하우스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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