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미쳤냐고 했지만.. 내가 '논 한 가운데' 있는 집을 택한 이유

조회수 2021. 9. 15. 18: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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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집 @오느른onulun 님의 노하우입니다.

✨인테리어 제보는 인스타그램 @todayhouse

| 오늘을 사는 오느른의 시골 폐가 리모델링 🏚️🏡

안녕하세요 :)

내맘대로 살고 나중에 수습하고, 그걸 또 유튜브로 연재하고 있는 서른 두 살 여자사람 PD 오느른입니다.

오늘은 오느른이 생각하는 집의 가치, 그리고 그걸 실현하고 있는 오느른 하우스를 보여드리려고 해요.

| 내가 생각하는 집의 가치

사실 저는 작년, (이 시골집을 사기 전에) 서울의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을 사고 싶었어요.

나 좀 예쁘게 살아보겠다고 매일 전세집, 월세집 예쁘게 고쳐주고 다른 데로 또 이사가는 루틴이 지겨워질 무렵, 종로구 산골짜기 마을을 발견했거든요.

실평 19평 정도 될까? 하는 주택인데 매매가 1억 9천.

여타 투룸 전셋가에 제 집이 생긴다는 게 너무 설레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집에서 보이는 뷰가 너무 예뻐서 다른 조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보통 요즘 새로 짓는 집들보다 오래된 집들이 창문이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왜인지는 모름) 이 집도 그랬어요.

남쪽으로 쭉 펼쳐진 알루미늄 샷시 창 너머로 평창동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거든요. 확 트인 뷰가 마치 서울에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았어요. (남산타워가 보이는데? 뭔 소리? ㅋㅋㅋ)

하지만 결국 이 집을 사지는 못했어요. 주인이 매매가를 갑자기 올리는 등 조건이 안 맞아서 계약이 불발된 것도 있지만, 사실 그 집을 사지 못 한가장 큰 이유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 소문이 났거든요.

"오느른(실명 대신ㅋㅋ)이  다 쓰러져가는 구옥 빌라를 산대!"

"아이고, 걔 또 세상 물정 모르는 짓 한다."

남들 다 아파트를 사는 와중에, 저의 낭만과 로망은 누군가의 걱정거리로 전락했습니다  ㅠㅠ

"야, 그 돈이면 거기에 얼마 더 대출 받아서 일산에 아파트를 사."

"아파트를 사야지, 빌라는 안 돼."

그 집에 살아줄 것도 아닌데 커피 사줘가며 강경하게 뜯어말리는 선배님들 덕에 저는 그 집을 포기하고, 상암동 전세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뭐 물론 그 덕에 지금은 전라북도 김제에 살고 있긴 하지만요 ^^)

하여튼, 그 때 처음으로 정말 사고 싶었던 집을 아쉽게 포기하게 되면서 엄청 찝찝한 마음이 남더라고요.

과연 '집의 가치'란 무엇일까?

합리적인 선택이란 무엇일까?

왜 나는 그 집에 꽂혔었지?

그때는 이 고민에 답을 못 내렸지만 그 일이 있고 1년이 지난 지금, 시골집을 사서 고쳐 살고 있는 저는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투자가치가 있는 위치, 교통 편리성 등을 보고 집을 고르는 게 가장 잘 알려진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지만, 사람은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재능이 있듯이 어쩌면 가끔은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맞을 때도 있다고.

그래서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집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사는 행복

제가 집을 볼 때 가장 우선 순위로 드는 것은 '그 집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바로 '뷰' 입니다.

대학생 때 처음 독립하고 지하 고시원에서 살아보면서 처절하게 느낀 점이 있어요. 채광과 뷰는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점이었죠.

그곳에서 몇 달을 사는 내내 저는 열 몇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항상 캄캄한 밤 중인 공간을 경험했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동굴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인 마당에, 한 달에 1-2만원 차이의 월세가 부담됨에도 '창문이 있는 방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어요.

월 23만원 지하 고시원에서 월 24만원 지상 고시원으로, 또 월 26만원 창문 있는 방으로.

그렇게 계속 룸 업그레이드를 하다가 그 다음엔 옥탑방, 투룸, 고즈넉한 느낌이 좋은 부암동, 창덕궁 옆의 원서동...

서울에서는 채광과 뷰가 좋으려면 소음이 가득한 대로변에 살아야 한다는 게 힘들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저는 자연스럽게 풍경과 공간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에 계속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침내 오게 된 지금의 김제 오느른 하우스에서 저는 확실히 깨달았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집의 가치는 우선적으로 '햇빛이 얼마나 잘 들어오는가', 그리고 '창 밖으로는 무엇이 보이는가'라는 걸요.

한가득 들어오는 햇살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줘서 더 움직이게 만들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활기를 북돋아줘요.

그리고 그 창문으로 무엇이 보이느냐에 따라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수도, 글이 쓰고 싶어질 수도, 그냥 생각에 잠길 수도 있죠.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사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집, 그게 집의 첫 번째 가치인 것 같습니다.

| 오느른 하우스에서 그 가능성을 엿보다

그래서 이미 지어진 집을 살 때 저는 그 집의 문과 창의 모양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요. (새로 창을 뚫는다는 건 상당히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도 하니까요. 기존의 문과 창이 예쁘게 나있다면 참 좋습니다.)

사실 지금의 저희 집은 오래된 한옥(?), 그것도 잘 지은 편에 속하기보다는 좋게 말해 자연스러운 멋이 있는 삐뚤빼뚤한 시골 민가, 농가입니다. 그래서 창문의 개념보다는 창호지 바른 조그만 문들이 상당히 많은 그런 집이었어요.

그게 누군가의 눈에는 엄청난 단점일 수도 있지만 (문이 너무 많아서 통풍이 잘 되는 만큼 엄청 추운...) 설계해주신 스튜디오 S.A.M 의 윤민환 소장님과 저의 눈에는 그게 가능성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곳곳의 문에 벽돌을 쌓아서 창의 사이즈를 조정하고, 그 과정으로 원하는 뷰가 그림이 되어 집 안에 들어오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할 수 있었거든요.

| 빨간 벽돌의 활약

원래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던 위치지만, 하단을 빨간 벽돌로 막아 창문으로 만들었습니다

욕실의 창문도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빨간 벽돌은 저희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인 재료예요. 쉽게 높낮이를 조절해서 창문의 사이즈를 제가 원하는대로 딱 맞출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지 않는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래된 민가에 빨간 벽돌 조합은 적당한 모던함을 더해주면서 오래된 집이면서도 새집 같은 느낌을 주는? 뭔가 케미가 생기는 조합인것 같아요. (개취 100%)

이 벽돌은 마당에도 활용해서 조금 색다른 모습을 연출했어요.

저렴하면서도 싸 보이지 않는 느낌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빨간 벽돌과의 콜라보를 200% 추천하는 바입니다.

| 창문을 바라보는 가구 배치

이렇게 창문이 많은 우리 집의 각 공간을 잘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거의 모든 가구들이 창문을 향하고 있다는 것!

[별채 작가의 방]

작가의 방 뷰는 뭐 말 안해도 다들 아시죠?

작가의 방 창을 처음 발견했을 때 사진이에요.

처음엔 멋모르고 이 창을 개폐가 가능한 창문으로 주문했다가 앞이 잘 안보여서 엄청 속상했더랬죠.

지금은 통창으로 교체 완료!

멋진 지평선 뷰 덕분에 이 방 책상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즐거운 공간이 됐어요.

작가의 방 작은 창 앞에도 어김없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테이블을 두었어요.

[거실]

거실에 둔 빈백 소파도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요.

저처럼 저희 집 강아지 효리도 바깥 풍경보며 멍 때리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 잠들기도 해요 ㅎㅎ

빈백 소파에 앉아 맞은 편 바깥 뷰를 보며 쉬는 시간이 참 행복해요.

[서재]

서재도 마찬가지로 책을 보다가 창을 볼 수 있게 창문 방향으로 소파를 배치했어요.

서재 창에서 보이는 뷰는 이렇습니다.

(저 산은 후지산...?) (전라북도 김제입니다만)

[침실]

침실 동쪽 창의 아침 채광도 빼놓을 수 없죠.

이 창살은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이 집에 있던 걸 살린 거예요. 덕분에 바로 밑에 침대를 둬도 사생활 보호가 가능!

침실 쪽 작은 창에서는 뒷마당이 보여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잘 자라고 있는 배추를 보면 얼마나 뿌듯하게요!

[욕실]

지난번 보여드린 이 욕실, 기억 나시죠?

지금은 조적 욕조가 들어선 욕실의 창에서는 이렇게 배추꽃이 보여요.

그래서 욕조를 만들 때 목욕하며 바깥 뷰를 볼 수 있게 신경 썼답니다.

| 없는 창문 만들어내기

많은 분들이 지난 3화에서 '그림 걸어 놓은 줄 알았다'고 말씀해주신 별채 화가의 방. 이 뷰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죠? ^^

그런데 사실 이 창문은 원래 없었어요. 동쪽 방향의 뷰가 워낙 좋기에 공사하면서 벽에 큰 창문을 내기로 했죠.

그 결과는 대성공!

이 통창은 시시각각 바뀌는 바깥 풍경을 그대로 집 안으로 데려와주고 있어요.

그야말로 창문이 액자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 집의 가치와 가능성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창들이 좋은 풍경을 보여주면 눈이 즐거운 것 외에 뭐가 좋냐고요?

그건 제 직업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항상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신경이 곤두서있는 PD로서 시력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 같고요 ㅎㅎㅎ (원경 원츄)

탁 트인 풍경이 주는 평온함이 긴장감과 부담감으로 팽팽해진 마음을 (요즘 20만 유튜버 됐거든요 훗) 순간 쉽게 내려놓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사실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에서는 마음을 편히 먹고 싶어도 잘 안되는 이유가 각박한 도시의 외관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좋은 뷰는 나를 기분 좋게 해주고 위로하기에 업무 효율이 오르고, 뭔가 기존의 내 능력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줍니다.

처음에 이 집을 살 때 다들 "논 한가운데 집을?!! 미쳤어?!!" 라는 반응이었는데, 사실 저는 이 집이 '논 한 가운데' 있어서 좋았어요.

왠지 김제평야의 논은 하루 아침에 재개발되거나 없어질 것 같지도 않고 (요즘은 바닷가 펜션들도 뷰가 다 막히던데 말이죠 ㅋㅋㅋ) 저만의 프라이빗 비치는 아니어도 논 바다를 갖게 된 거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닷가 앞 집은 비싸니, 논바다 앞의 집을 사자. 뭐 이런 기적의 논리였죠.

이렇듯 집의 가치나 가능성은 누가 주인이 되고, 그 집에서 무얼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를 통해 이 집에서 뭘 할 수 있는지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꼭 이 집이 아니더라도, 한국에는 허물리지 않아야 될 좋고 예쁜 낡은 집들이 많이 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진짜 공간'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며 혼자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통 해외 여행을 가면, 특히 유럽 같은 데를 가면 그 나라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이 예쁘다며 꺅꺅 소리지르다 오는 게 제 모습이었는데요. (그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있잖아요... 다들 아시죠..?)

그런데 반대로, 우리나라의 보통 사는 사람들이 사는 집은 뭐지? 한국에 낯선 사람들이 이 곳에 딱 떨어져서 독특하다, 예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게 뭘까. 내가 놓치고 있는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내가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외부인이라면 세월이 묻은 빨간 주택 빌라, 옥상에는 기와로 지붕 모양만 낸, 외관만으로는 몇 집이 사는 건지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는 '재개발 대상'인 그 집들이 예뻐 보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종로구의 그 오래된 다세대 주택을 사려고 고민하던 시기로 시간을 돌려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그 집을 샀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집이 주는 느낌과 뷰가 눈에 밟히거든요.

| 나만의 '집의 가치'를 찾아보세요

집을 '투자 가치'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저처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취향 혹은 기준 때문에 집을 사는 일을 고민하고 계시나요?

물론 집을 산다는 건 일생일대 중요한 결정인 만큼 신중할 필요는 있지만, 그 집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느냐 뭘 하고 싶으냐에 따라 답은 개개인 별로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억지로 시선을 바꿀 필욘 없지만,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망설이고 있다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 오느른답게 길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럼 오느른 여기까지 :)


4500만원에 산 299평 땅,
어느 순간 애물단지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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